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숙(敬叔), 호는 외암(畏庵). 이천 출신. 이제헌(李齊憲)의 아들이며, 정국공신 이곤(李坤)의 7세손이다. 효행이 뛰어났으며,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히, 어버이를 섬기는 일을 비롯하여 자기수양에 대한 실천이나 마음에 느끼는 것이 있으면 기록하여 후일의 참고로 하였다. 15, 16세부터 일기를 써 평생 동안 수십권의 기록을 남겼다.
성리학에 있어서 선인들이 미처 발명하지 못한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해 연구하여 지론을 확립하고, 이황(李滉)의 학통을 따라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입장을 지지하여 『사칠부설(四七附說)』 1권을 저술하였다.
또한, 사학도 깊이 연구하여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를 탐구하여 왕이 필독할 책임을 강조, 찬양하는 서문을 지었다. 숙종 때 학행으로 천거되어 세 고을의 수령을 지냈고, 1722년(경종 2) 세제익위사익위(世弟翊衛司翊衛)에 임명되었다.
경연(經筵)에 들어가면 항상 임금에게 양심(養心)·양사(養士)·양민(養民)·극기(克己)를 실천할 것을 진언하였다. 1727년(영조 3) 다시 익위에 임명되었으나 고령으로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여 사퇴하였다. 죽은 뒤에 이천군 사림들이 읍의 동쪽에 사당을 세워 학덕을 추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