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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경의 하나로, 문자의 뜻을 고증하고 설명하는 사전적인 성격을 지닌 유교경전.
내용 요약

『이아』는 13경의 하나로, 문자의 뜻을 고증하고 설명하는 사전적인 성격을 지녔다. 『한서』 예문지에는 20편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 전하는 것은 19편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의 작자를 ‘주공’, 혹은 ‘공자 문하’의 저술이라고 하는데 모두 고증할 수 없다. 명나라의 조환광은 ‘이’가 꽃 이름이고, ‘아’는 새 이름으로서, 사물 이름 및 경전을 가르칠 때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이규경은 “『이아』 1만 791자는 경전을 읽을 때에 문자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먼저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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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3경의 하나로, 문자의 뜻을 고증하고 설명하는 사전적인 성격을 지닌 유교경전.
내용

문자의 뜻을 고증하고 설명하는 사전적인 성격을 지닌 책이다.

한나라의 유희(劉熙)는 ‘이아’라는 명칭의 뜻을 설명해 ‘이’자는 가깝다는 뜻이고, ‘아’자는 바르다는 뜻으로, 말의 뜻을 이해할 때 가깝고 바른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였다.

명나라의 조환광(趙宦光)은 ‘이’가 꽃 이름이고, ‘아’는 새 이름으로서, 새나 짐승과 풀이나 나무 및 경전을 가르칠 때 도움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이 책의 작자를 주공(周公)이라 말한 학자로는 주1의 장읍(張揖)이나 당나라의 육덕명(陸德明)을 들 수 있다. 또한 어떤 학자는 주2 · 주3주4 · 양문(梁文) 등이 증보했다 하나 모두 고증할 수 없는 전승일 뿐이다.

송나라의 주5는 공자 문하의 저술이 아니라고 보고, 문리로 보아 진 · 한시대의 『시경』을 해석했던 여러 학자들의 설을 모아놓은 것으로 보았다. 또한 송나라의 주6은 『시경』의 문자를 위주로 했고 해석은 『모시(毛詩)』의 설에 의거한 점에서 한나라 사람이 지은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이 책을 검토하면서 여러 경전에서 널리 채집하고 제자백가의 문자도 섞었으며, 주(周)나라 목왕(穆王)의 기사를 소설로 표현한 「목천자전」과 고대지리서인 『산해경』의 내용도 채용하고 있는 사실에서 진 · 한 이래 문자학을 하던 소학가(小學家)가 잡다하게 수집한 것이라 보고 있다.

이 책은 『한서』 예문지에는 20편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 전하는 것은 석고(釋誥) · 석언(釋言) · 석훈(釋訓) · 석친(釋親) · 석궁(釋宮) · 석기(釋器) · 석악(釋樂) · 석천(釋天) · 석지(釋地) · 석구(釋丘) · 석산(釋山) · 석수(釋水) · 석초(釋草) · 석목(釋木) · 석충(釋蟲) · 석어(釋魚) · 석조(釋鳥) · 석수(釋獸) · 석축(釋畜)의 19편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이 존중되기 시작한 것은 『한서』 예문지에서 육예류(六藝類)에 속한 것으로 『효경』 뒤에다 수록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진(晉)나라의 주7이 10여 학자의 설을 집성하면서 여러 주석들이 나왔다. 여기에는 곽박의 주와 송나라 형병(邢昺)의 소로 이루어진 『이아주소(爾雅注疏)』(11권), 송나라 때 주8가 지은 『이아주(爾雅注)』(3권), 나원(羅願)이 지은 『이아익(爾雅翼)』(32권)이 있다.

또한 청나라 때 강조석(姜兆錫)이 지은 『이아보주(爾雅補注)』(6권), 소진함(邵晉涵)이 지은 『이아정의(爾雅正義)』(20권), 주9이 지은 『이아의소(爾雅義疏)』(10권), 대진(戴震)이 지은 『이아문자고(爾雅文字考)』, 임영종(任領從)이 지은 『이아주소전보(爾雅注疏箋補)』 등이 있다. 이 주석들 중에서 곽박과 학의행의 것이 가장 유명하다.

우리 나라에서도 윤휴(尹鑴)가 『이아친속기(爾雅親屬記)』를 지었고, 계덕해(桂德海)가 『이아편목(爾雅篇目)』을 지었으며, 이규경(李圭景)은 『독이아변증설(讀爾雅辨證說)』을 지었다.

이규경은 “『이아』 1만 791자는 경전을 읽을 때에 문자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먼저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하며, 경전과 『이아』는 표리 관계라 할 만큼 연관된 것으로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규경은 이 책의 유래와 작자를 고증하고 책이름의 의미를 해석했으며, 역대의 주석서들을 망라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의 작자에 대해 주공과 공자를 끌어들이는 것을 거부한다. 주석서들에서 모아서 만든 것이라 한 곧, 주희(朱熹)의 말을 인용해 주공의 저작설을 부정하고 있으며, 당나라에서 경전을 대경 · 중경 · 소경으로 나누면서 이 책을 소경에 넣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박제가(朴齊家)도 『효경』과 『이아』는 소경이라고 확인하였다. 정약용(丁若鏞)도 「십삼경책(十三經策)」에서 이 책의 작자 문제를 검토하면서 주공의 저작설을 반박하고 있다.

이 책은 고증학의 기본 분야인 소학(小學), 곧 문자학의 자료로서 청나라의 고증학자들에게는 상당히 존중되었다. 『사고전서(四庫全書)』에서는 경부 소학류의 훈고부문으로 수록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나라의 도학자들에게는 경전의 범위나 독서의 항목으로 넣지도 않을 만큼 소홀하게 취급되었다. 이이(李珥)『격몽요결』 독서장에서도 오서(소학과 사서)와 오경 및 성리서를 독서 대상으로 열거했을 뿐 『효경』이나 『이아』에 관해서는 언급하지도 않고 있다. 다만, 실학자들이 단편적인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이아곽주(爾雅郭注)』(곽박)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기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이규경)
『유학입문』(양대연, 1967)
주석
주1

중국 남북조 시대의 북조(北朝) 최초의 나라. 386년에 선비족(鮮卑族)의 탁발규가 화베이(華北)에 세운 나라로, 적극적인 중국 동화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반란이 일어나 534년 동위(東魏)와 서위(西魏)로 분열하였다. 우리말샘

주2

중국 춘추 시대의 사상가ㆍ학자(B.C.551~B.C.479).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 노나라 사람으로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인(仁)을 정치와 윤리의 이상으로 하는 도덕주의를 설파하여 덕치 정치를 강조하였다. 만년에는 교육에 전념하여 3,000여 명의 제자를 길러 내고, ≪시경≫과 ≪서경≫ 등의 중국 고전을 정리하였다. 제자들이 엮은 ≪논어≫에 그의 언행과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말샘

주3

중국 춘추 시대의 유학자(B.C.507~B.C.420?). 본명은 복상(卜商). 공자의 제자로서 십철(十哲)의 한 사람이다. 위나라 문후(文侯)의 스승으로 시와 예(禮)에 능통하였는데, 특히 예의 객관적 형식을 존중하였다. 우리말샘

주4

중국 진나라ㆍ한나라 때의 유학자(?~?). 진나라 때에 박사를 지냈으며, 한나라 때에는 유가에 기초해 조정에 의례를 제정했다. 공로로 태자태부(太子太傅)의 벼슬까지 올랐다. 우리말샘

주5

중국 송나라의 정치가ㆍ문인(1007~1072).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ㆍ육일거사(六一居士). 당나라 때의 화려한 시풍을 반대하여 새로운 시풍을 열고, 시ㆍ문 양 방면에 걸쳐 송대 문학의 기초를 확립하였으며, 당송 팔대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저서에 ≪신오대사≫, ≪신당서≫, ≪모시본의(毛詩本義)≫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6

중국 남송 때 정치가(1077~1148). ‘지주’로 있을 때 ‘호강’ 지주의 세력을 억누르다가 모함으로 파직되었으나 고종(高宗) 때 복직되어 상서좌승(尙書左丞)이 되었다. 금나라와의 전쟁에서 공이 있었다. 저서 ≪석림연어(石林燕語)≫는 신종(神宗) 이후 고종 때까지 제도와 문물을 수필 형식으로 적어 역사적으로 참고가 된다. 우리말샘

주7

중국 서진(西晉) 말에서 동진(東晉) 초의 학자ㆍ시인(276~324). 자는 경순(景純). 박학하고 시문과 점술에 뛰어나 원제에게 상서랑(尙書郞)으로 임명되었다. 322년에 중신인 왕돈(王敦)이 반란을 일으켜 관군이 패하자 살해되었다. ≪목천자전≫, ≪초사≫, ≪산해경≫ 따위의 주석이 유명하다. 우리말샘

주8

중국 송나라 때의 사학자(1104~1162). 협제 선생(夾漈先生)이라 불렸다. 고종(高宗) 때 추밀원(樞密院) 편수관(編修官)의 지위에 올랐으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반고’보다는 ‘사마천’을 숭상하였으며 찬수자가 ‘포폄’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저서로 ≪통지(通志)≫, ≪이아주(爾雅注)≫ 등이 있다. 우리말샘

주9

중국 청나라의 학자(1757~1825). 자는 순구(恂九). 경학, 사학, 지리학, 농학 따위의 여러 분야에 해박하였으며, 꿀벌과 제비의 생태를 관찰ㆍ연구하기도 하였다. 특히 꿀벌의 생활을 관찰한 ≪봉아소설(蜂衙小說)≫, 제비의 생태를 다룬 ≪연씨춘추(燕氏春秋)≫에서는 실학이 발생하던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저서에 ≪산해경전소(山海經箋疏)≫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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