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朱熹)가 간오(刊誤:글의 틀린 곳을 바로 잡음)하고 동정(董鼎)이 주(註)하였다.
규장각의 여러 소장본 중에 윤효손(尹孝孫)이 편한 것이 있는데, 구간기(舊刊記:처음 출간한 때 · 장소 · 간행자 등을 적은 부분)는 1475년(성종 6)에 전주부에서 개판(開板)한 것으로 되어 있고, 간기는 1530년(중종 25)에 남원부에서 중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불분권 1책, 목판본이며 사주단변(四周單邊)이다. 경오자(庚午字)를 본뜬 또 다른 목판본으로 1책 48장(張) 사주쌍변(四周雙邊)으로 된 것이 있다.
표지 뒷면에는 1631년(인조 9)에 좌부승지 정씨(鄭氏)에게 하사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 밖에 방재주을해자본(倣再鑄乙亥字本)으로 1874년(고종 11)에 보양청(輔養廳)에서 중간한 것이 있다.
본래 공자구댁(孔子舊宅)에서 나온 것은 ≪고문효경 古文孝經≫으로, 진시황(秦始皇) 분서 때 이 책을 안지(顔芝)가 보장(保藏)하여 전하였고, 그 아들 정(貞)이 다시 쓴 것이 ≪금문효경 今文孝經≫이다.
공안국(公安國)이 ≪고문효경≫을 해독하고 주석하였으며, 당 현종(玄宗) 때 ≪어주효경 御注孝經≫이, 송 진종(眞宗) 때 ≪효경정의 孝經正義≫가 나왔다. 주희는 고문(古文)이 잘못되었다고 하여 새로 경문(經文) 1장(章)과 전문(傳文) 14장으로 체계를 잡았다.
보통 원대(元代)의 학자 웅화(熊禾)의 서문과 명대(明代)의 학자 서관(徐貫)의 발문이 있는 본이 널리 유행했고, 동정이 주석 및 편집한 책이 많이 통용되었다.
주희가 바로잡은 체계에 의하면 경(經)의 1장은 금문(今文)의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 전(傳)의 수장(首章)은 금문의 광지덕장(廣至德章) 제13, 전 2장은 금문의 광요도장(廣要道章), 전 3장은 금문의 삼재장(三才章) 제7, 전 4장은 금문의 효치장(孝治章) 제8로 만들었다.
전 5장은 금문의 성치장(聖治章) 제9, 상일절(上一節) 전 6장은 성치장(聖治章) 하일절(下一節), 전 7장은 금문의 기효행장(紀孝行章) 제10, 전 8장은 금문의 오형장(五刑章) 제11, 전 9장은 금문의 사군장(事君章) 제17, 전 10장은 금문의 감응장(感應章) 제16, 전 11장은 금문의 광양명장(廣揚名章) 제14, 전 12장은 고문의 규문장(閨門章), 전 13장은 금문의 간쟁장(諫爭章) 제15, 전 14장은 금문의 상친장(喪親章) 제18로 각각 만들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경(經)에서는, 첫머리에서 효(孝)의 처음과 끝을 정의하고 있다. 부모가 물려준 신체의 보전으로부터, 그의 행적에 관한 후세의 평가에 이르기까지 효의 적용 대상이 아닌 것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효는 천자 · 경대부 · 서인 등 모든 신분계층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윤리 규범임을 밝히고 있다. 전 1장은 지극한 덕[至德]만이 온 천하를 순(順)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전 2장은 백성을 가르치는[敎民] 가장 근본적인 길이 효제예악(孝悌禮樂)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특히 경(敬)이 뭇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중요한 길임을 강조하였다. 전 3장은 효가 하늘의 경(經)이며 땅의 의(義), 백성의 행(行)이므로 마땅히 효를 좇아서 그것으로 천하를 순하게 하여야 함을 말하였다.
또, 전 4장은 천자와 제후 · 경대부가 효도를 근본으로 하여 천하와 나라와 가정을 다스리면 백성이 화목하고 상하가 서로 대립하지 않을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전 5장에서는 효도가 덕의 근본임을 풀이하였고, 전 6장에서는 친부모를 사랑하지 않고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덕과 예에 어긋남을 경계하였다.
전 7장에서는 거(居)할 때에는 경(敬)하는 마음을 다하고, 봉양하는 데는 부모가 즐거워하도록 하고, 부모가 병이 있으면 몹시 근심하고, 죽으면 슬픔을 다하고, 제사지내는 데에는 엄숙한 마음을 다하는 것이 곧 사친(事親)임을 설명하고 있다.
전 8장에서는 불효의 죄를 극언하였으며, 전 9장에서는 임금을 섬기는 도리[忠]를 설명하였는데, 주희의 주(註)에 의하면 효도하는 마음을 미루어 나라를 섬기는 것이라 하였다. 전 10장에서는 천자의 효도를 풀이하였으며, 전 11장에서는 몸을 세우고[立身] 이름을 드날리는 것[揚名]과 선비의 효도하는 법을 해석하였다.
전 12장은 효와 우애와 벼슬하는 법을, 전 13장은 부모에게도 간(諫)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였다. 마지막 전 14장은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섬기는 데는 사랑[愛]과 공경[敬]으로 하고, 죽어서 섬기는 데는 슬픔[哀]과 설움[戚]으로 하니, 이로써 부모 섬기는 일이 다함을 말하고 있다.
이상 ≪효경≫의 경(經)과 전(傳)은 초학자를 위한 글이므로 문장이 명백하고 간결하다. 또한 ≪대학≫이 학문의 근본을 밝힌 책이라 한다면, ≪효경≫은 행위의 준칙을 밝힌 책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조선조에서 역대로 여러 차례 간행하여 보급하였는데 1589년(선조 22)에 유성룡(柳成龍)의 발문이 있는 후간본이 중심이 되어 있다. 또 일반에서는 간본을 쉽게 구할 수 없어서 필사로 책을 꾸며 익히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이와 같은 ≪효경≫의 성격은 우리 나라 전통사회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쳐, 효를 통치사상의 근간으로 삼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효경≫은 민간의 아동들로부터 군왕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필독서였으며, 효는 전통사회 윤리관의 중핵사상(中核思想)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전통사회의 문화적 · 사회적 일체감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덕목이기도 하였다. ≪효경≫은 한국 전통사회의 성격 형성에 이와 같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음과 동시에, 역기능적인 요인으로도 작용하였다.
뿌리 깊은 남존여비사상, 가부장적 권위주의, 엄격한 도덕적 지상주의, 명분 위주의 윤리관 등은 오늘날 ≪효경≫이 보편 윤리서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도서 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