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친필본(親筆本). 말미에 있는 ‘임신모춘(壬申莫春) 다산노초(茶山老樵)’라는 기록으로 보아 저작연대는 1812년으로 추정된다.
내용은 당시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주흥사(周興嗣)의 ≪천자문≫, 강용(江鎔)의 ≪통감절요 通鑑節要≫, 증선지(曾先之)의 ≪사략 史略≫이 아동용 교재로는 부적당함을 논한 것이다. <교치설>은 그의 또 다른 저작물인 <천문평 千文評>·<사략평 史略評>이나, 원저자가 박지원(朴趾源) 혹은 정약용의 양설이 있는 <불가독설 不可讀說>의 내용과 비슷하다.
정약용은 ≪천자문≫이 서거정(徐居正)의 ≪유합 類合≫보다 그 가치가 적은 것으로, 아동의 문자교육에 부적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서거정의 ≪유합≫은 ≪이아 爾雅≫·≪급취 急就≫의 장점이 남아있으나 ≪천자문≫은 단지 한때의 희작(戱作:실없이 지은 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약용은 ≪천자문≫의 가장 큰 결함은 문자배열이 족별(族別) 혹은 유별(類別)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들고 있다. 즉, 천문개념에서 색채개념으로, 색채개념에서 우주개념으로 급격한 문자변환을 하는 ≪천자문≫은 아동들로 하여금 사물에 대한 일관성 있는 이해를 방해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는 그 대안으로 사물을 동일한 성격과 유형으로 범주화하여 교육시키는 유별 분류체계를 제시하고, 그 구체적인 작업으로 2천자로 구성된 ≪아학편 兒學編≫을 간행하였다. 또한, 증선지의 ≪사략≫이 지닌 값어치는 주자(朱子)의 ≪소학 小學≫에 비하여 훨씬 그 가치가 적은 교재로서는 가치가 없음을 주장하였다.
역사서에 있어서도 천황씨(天皇氏)·인황씨(人皇氏) 등 믿을 수 없는 전설이나 신화와 같은 황탄(荒誕 : 허황되고 황당함.)한 내용을 싣고 있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 ≪소학≫은 고례(古禮)와 명언 가운데에서 중요한 내용을 발췌하였으므로 아동교육에 준칙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교치설>에서는 강용의 ≪통감절요≫는 ≪국풍 國風≫·≪소아 小雅≫·≪논어≫·≪맹자≫·≪대학≫ 등과 비교할 때 그 교육적 가치가 없음을 논하였다. 그 이유는 저자 강용이 도학자나 문장가가 아닌 의술에 종사하는 자로서 사상의 신뢰성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통감절요≫가 주자의 ≪통감강목 通鑑綱目≫을 모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사마온공(司馬溫公)의 ≪자치통감≫의 필법을 옮기고 있어 그 대의에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통감절요≫의 15권은 그 분량이 지나치게 많아 아동들에게 염증을 주고, 최소한 5, 6년의 기간이 소요되어 독서에 흥미를 잃게 할 위험성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그는 교재를 수시로 바꾸어 아동들에게 신선감을 주고, ≪논어≫·≪모시≫ 등 다양한 교재를 사용하여 학습의 질을 높일 것을 권하였다. 또한, 항우(項羽)나 유방(劉邦)의 고사를 읽는 것보다는 소동파(蘇東坡)·이태백(李太白)·도연명(陶淵明) 등의 시문을 읽는 것이 더욱 도에 합당함을 역설하였다.
한편 아동들에게 글쓰는 법을 가르칠 때에는 중국의 고각(古刻)을 기본으로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말미에는 잡술(雜術)과 참설(讖說: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 길흉을 예언하는 설)·비기(祕記)에 치우치는 것은 크게 경계하여야 할 것이라는 짤막한 경구가 실려 있다. 다산학회(茶山學會)에서 간행한 ≪여유당전서보유 與猶堂全書補遺≫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