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양서당은 회헌(檜軒) 유의손(柳義孫) 선생과 기봉(岐峯) 유복기(柳復起)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는 곳이다. 처음 설립할 당시인 1615년에는 유복기가 서재로 건립하여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었다.
1716년에 후손들에 의해 서당으로 중창하였고, 그 후 추원사(追遠祠)를 세워 1780년에 유복기의 위패를 봉안하였으며, 1806년에 유의손의 위패를 추봉(追奉)하였다.
매년 세초 정월 6일에 후손들이 사당에 정알(正謁)의 예를 갖추며 봄 · 가을 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 향사(享祀:제사)를 지낸다. 유의손은 조선 초기의 학자로 세종때 이조참판 · 예조참판을 지냈으며, 유복기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임진왜란 때는 의병장으로 활약하였고, 예빈시정(禮賓寺正)을 지낸 바 있다.
사당인 추원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강당인 역락당(亦樂堂)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2칸 크기의 방(房)이 딸려 있다.
‘역락(亦樂)’이라는 강당명은 논어의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에서 따온 것이며, 강당에 딸린 양쪽 방에도 각각 ‘숭덕재(崇德齋)’와 ‘광업재(廣業齋)’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그 밖에 전사청과 고사가 현존한다.
기양서당은 안동 입향 전주유씨가 결집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되는 장소이다. 임하댐 수몰지역 내에 있던 건물로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1988년 이곳으로 이건하였다. 지금도 춘추 향사는 물론 하계교양강좌 등을 통해 조상의 유덕을 계승 발전시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1979년 경상북도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