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구지(久之). 아버지는 금산군수 이덕린(李德隣)이다.
1753년(영조 29)에 음사로 장녕전참봉(長寧殿參奉)에 제수되고 그 뒤 동부봉사(東部奉事)·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을 거쳐, 숙종의 계비 인원왕후(仁元王后)의 능을 조성, 감독하는 감조관(監造官) 등을 지냈다.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의금부의빈도사(義禁府儀賓都事)·제천현감·제용감주부·종묘서영(宗廟署令)·안성군수·장원서별제(掌苑署別提)·헌릉영(獻陵令)을 지낸 뒤 1771년에는 황주목사가 되었다. 이 때 옥송(獄訟)을 간결히 처리하고, 군적(軍籍)을 바로잡고 환곡의 폐단을 개혁하는 등 목민관의 소임을 충실히 하였으며, 재난을 당한 사람, 무고하게 법망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을 구제하는 데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