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마덕산(馬德山)·공문덕(孔文德). 경상북도 영천 출신. 1933년 6월 조선의열단(朝鮮義烈團) 국내공작원 안병철(安炳喆)의 권유로 독립투쟁을 결심하고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였다.
1933년 난징[南京] 조선의열단 간부학교 제2기생으로 입교하여 6개월간 군사훈련을 받고 1934년 3월 허난성[河南省]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 뤄양분교[洛陽分校]에 입교하여 제3기생으로 졸업하였다. 1935년 졸업한 뒤 난징·상해 등지를 내왕하면서 지하공작을 폈다.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중국경찰에 협조하여 중국인으로 간첩활동을 자행하는 자들을 미행하거나 색출하여 체포, 숙청하는 데 공을 세웠다. 1938년 1월에 중국 중앙군 특별훈련반에 입대하여 소정의 군사교육을 수료하고 창사대회전[長沙大會戰]에 참전하였다.
1939년 1월 중국군 제21사단 제122연대에 배속되어 근무하면서 대적선무공작(對敵宣撫工作)·섬멸작전·밀정숙청 등의 작전업무에 종사하였다.
1943년에는 산시성부곡[山西省府谷]에서 중대장으로 소속 부대원을 진두지휘하고 일본군과 격전을 전개하다가 생포되어 베이징[北京]으로 압송되어 그해 6월 잔혹한 고문으로 죽었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