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8년(세종 20)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향선동에서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599년(선조 32)에 유생 김사영(金士詠)·강탁(姜濯)·강윤조(姜胤祖) 등이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중건하였으며, 1649년(인조 27)에 풍영루(風詠樓)를 신축하였다.
1673년(현종 14)에 현감 한백기(韓百紀)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745년(영조 21)에 현감 김성흥(金聖興)이 명륜당을 창건하고 1794년에 강성지(姜聖址)를 중심으로 한 유생들이 중수하였다.
1826년(순조 26)에 현감 이경번(李慶藩)이 동재·서재와 풍영루를 중수하고 선원청을 신축하여 여기에다 역대왕의 존호와 어보(御譜)를 봉안하였으며, 1896년에 선원청을 중수하고 선원각이라 개칭하여 군내 유림이 모여 강론하는 재실로 개편하였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풍영루·선원각 등이 있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과 동무·서무에 우리 나라 18현 및 중국 94현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여왔다. 1950년대 이후의 사항은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