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재 ()

이윤재
이윤재
언어·문자
인물
일제강점기 때, 조선어사전 편찬위원, 기독신문사 주필 등을 역임하며 한글 보급과 우리말사전 편찬에 힘쓴 교육자 · 국어학자 · 독립운동가.
이칭
환산(桓山), 한뫼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8년(고종 25)
사망 연도
1943년
출생지
경상남도 김해
관련 사건
3·1운동|조선어학회사건
정의
일제강점기 때, 조선어사전 편찬위원, 기독신문사 주필 등을 역임하며 한글 보급과 우리말사전 편찬에 힘쓴 교육자 · 국어학자 · 독립운동가.
개설

호는 환산(桓山) · 한뫼. 경상남도 김해 출신. 용준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김해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김해 합성학교(合成學校)에서 교편을 잡은 뒤, 다시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서 수업하였다.

1913년부터 마산의 창신학교(昌信學校) · 의신여학교(義信女學校)에서 교편을 잡다가 평안북도 영변의 숭덕학교(崇德學校) 교사로 재직 중 3 · 1운동에 관련되어 평양 감옥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1년 중국에 건너가 북경대학 사학과에서 수학한 뒤 1924년 귀국하여 정주의 오산학교(五山學校)를 거쳐 협성(協成) · 경신(儆新) · 동덕(同德) · 배재(培材) · 중앙(中央) 등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7년 주1주2 편찬위원이 되었고, 민족정신의 보전 · 계승을 위한 잡지 『한빛』을 편집, 발행하였다.

1929년 조선어연구회 ·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의 집행위원, 1930년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제정위원이 되어 국어통일운동의 중진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31년 연희전문학교에서 강의를 맡았으며, 이해부터 4년간 여름마다 동아일보사 · 조선일보사 등에서 벌인 하기한글강습회 강연차 지방을 순회하였다. 1932년에는 조선어학회의 기관지 『한글』의 편집 및 발행 책임을 맡았으며, 1934년에는 주3의 창립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감리교신학교에서 강의를 맡았으며, 조선어표준어사정위원회의 사정위원이 되고, 1936년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의 편찬전임집필위원이 되었다. 1937년 주4에 관련되어 서대문 감옥에서 약 1년반 옥고를 치른 뒤, 1939년 대동출판사(大同出版社)에 근무하였다.

1941년 기독신문사 주필로 일하면서 한글보급과 우리말사전 편찬에 주력하다가, 1942년 주5으로 동지들과 함께 홍원경찰서에 붙잡혀 함흥형무소에서 복역 중 옥사하였다.

1947년 유고 『표준한글사전』(1953)이 간행되었다. 이는 조선어학회에서 발표한 「한글마춤법통일안」과 「사정한 조선어표준말모음」을 기준삼아 처음으로 엮은 것이다.

그 밖에 『성웅(聖雄) 이순신(李舜臣)』(한성도서출판주식회사, 1931), 『문예독본(文藝讀本)』 상 · 하권(상권: 진광당, 1931, 하권:한성도서출판주식회사, 1932) 등의 저서가 있으며, 박지원(朴趾源)의 『도강록(渡江錄)』을 초역(抄譯)하여 『문장』 1권 10호(1940.12.)에 연재한 것을 엮어 단행본(대성출판사, 1946)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대한민국건국훈장 독립장이 주6되었다.

참고문헌

『한글학회50년사』(한글학회, 1971)
『한뫼선생』(김윤경, 『신천지』, 1954.6.)
「인간 이윤재」(이희승, 『신태양』, 1957.8.)
「이윤재」(강신항, 『한국의 인간상』4, 신구문화사, 1965)
「이윤재」(강신항,『한국근대인물백인선』, 동아일보사,1970)
「환산 이윤재선생 특집호」(『나라사랑』13, 외솔회, 1973)
주석
주1

1918년에 민족 계몽과 학술 연구를 목적으로 발족한 단체. 최남선, 박승빈, 오세창 등이 주동이 되어 잡지 ≪계명(啓明)≫ㆍ≪낙원(樂園)≫ㆍ≪신천지≫ 등을 발간하고, ≪삼국유사≫ㆍ≪금오신화≫ 등의 고전을 간행하여 민중 교화에 힘썼다.    우리말샘

주2

조선어사전 간행회에서 창간한 국어사전. 1938년에 간행되었으며,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따라 표기한 최초의 사전이다.    우리말샘

주3

1934년 5월, 이윤재ㆍ손진태 등이 조직한 학술 단체. 우리나라의 역사ㆍ언어ㆍ문학 따위를 우리 학자의 손으로 연구하자는 뜻에서 조직하였으며, 기관지로 ≪진단 학보≫를 발간하였다.    우리말샘

주4

1937년에 일제가 수양 동우회와 관련된 180여 명의 지식인을 검거한 사건. 41명이 기소되었다가 무죄로 석방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지식인 다수가 친일로 돌아섰다.    우리말샘

주5

1942년 10월에 일본어 사용과 국어 말살을 꾀하던 일제가 조선어 학회의 회원을 투옥한 사건. 일제는 조선어 학회를 학술 단체를 가장한 독립운동 단체라고 꾸며, 회원들에게 혹독한 고문을 자행하였다. 이 사건으로 학회는 해산되고 편찬 중이던 국어사전 원고의 상당한 부분이 없어졌다.    우리말샘

주6

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줌. 우리나라의 경우 긴급 상황에서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다가 사망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사회 전체의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 사람, 생전에 큰 공을 세워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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