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강양(江陽). 자는 직보(直甫). 산음(山陰) 출신. 아버지는 증형조참판 이난춘(李蘭春)이며, 어머니는 박영준(朴英俊)의 딸이다.
태어나면서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었다. 자라면서 동리 아이들을 모아 전쟁놀이를 하면서 무술을 연마하고, 말달리기와 활쏘고 창쓰는 법을 익히며, 병서를 읽어 장재로 성장하였다.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어버이의 봉양을 위하여 벼슬길에 나가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1622년(광해군 14) 전라도우후(全羅道虞候)로 기용되고, 이듬해 인조반정이 있은 뒤 중앙으로 불려와 무관직을 역임하면서 이원익(李元翼)·홍서봉(洪瑞鳳)·구인후(具仁垕) 등을 시중하였다.
1627년(인조 5) 부장(部將)으로 승진하고, 이듬해 유효립(柳孝立)·정심(鄭沁)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맡아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이 공으로 영사원종공신(寧社原從功臣) 1등에 봉하여지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올랐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한성방어의 책임을 맡고 청군의 강공에 맞서 여러 번 전공을 세웠다. 이듬해 초계군수에 임명되어 민폐를 제거하고 탐관오리를 응징하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다. 그 공으로 가선대부가 되고, 이어서 경상좌도수군절도사로 승차하였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