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중윤(仲胤), 호는 풍애(楓厓). 이당(李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집(李集)이다. 아버지는 참의 이지직(李之直)이며, 어머니는 이원보(李元普)의 딸이다.
1411년(태종 1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17년(태종 17)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 검열에 발탁되었다. 그 뒤 사헌부감찰을 거쳐 1429년(세종 11) 천추사(千秋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어 형조좌랑·예조좌랑·집의·판군자감사·예조참의·경상도관찰사·형조참의·대사헌·한성부윤 등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에는 한성부윤으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형조참판을 거쳐, 1454년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정권을 잡게 되자 호조판서에 승진되고, 1455년 세조의 즉위와 함께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봉하여졌다. 이어서 판중추부사로서 판호조사를 겸임하고 우찬성을 거쳐 1459년(세조 5) 우의정에 오른 뒤 곧 치사(致仕)하였다. 시호는 충희(忠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