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서천(舒川). 자는 진여(晉如), 호는 성오(省吾). 홍산(鴻山) 출신. 이대의(李大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돈림(李敦臨)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복형(李復亨)이다.
1651년(효종 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같은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교서로 등용되었다. 이어서 전적을 거쳐 감찰이 되었다. 1658년 호조좌랑과 춘추관기주관을 역임하고 예조정랑과 직강을 지냈다.
1663년(현종 4) 예조참의를 지낸 뒤 외직으로 나가 금교·영서·양재의 찰방을 지내고, 이어서 음성·창평·연산 등의 군수를 역임하였다. 특히, 금교찰방을 10년 동안 두번이나 지냈는데 근검한 생활이 모범이 되어 거처하던 공관을 현도(玄都)라고 불렀다.
역마의 관리를 잘하여 폐사되는 일이 없었고, 역리의 기강을 확립하여 군령의 전달에 침체되는 일이 없었다. 군수로 있을 때에는 청렴과 결백으로 군민을 다스렸기 때문에 창평군민들이 송덕비를 세워 선정을 기렸다. 1678년(숙종 4) 사예로 승차되고, 이어서 승문원판교·예빈시정을 지냈다.
춘추관편수관이 되어서는 『현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조정의 여러 곳의 청환을 지냈으나 생활이 청한하여 모옥은 바람과 비를 가리지 못하였고, 집에 돌아와서는 채식만 하였다. 글씨를 잘 썼는데, 대보단(大報壇)에 남은 금석문자가 이일삼의 글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