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2년(숙종 7) 여진이 정주관(定州關) 밖에 와서 주둔하자 침입하려는 것인지 의심하여, 여진의 추장인 허정(許貞) 및 나불(羅弗) 등을 잡아 광주(廣州)에 가두고 고문하니 과연 침략할 것이라 하므로 억류하고 보내지 않았다.
이때 이일숙이 보고하기를 “여진은 허약하니 족히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하여 숙종이 임간(林幹)을 파견하였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1112년(예종 7) 어떤 자가 속리사 주지(俗離寺主持) 도생승통(道生僧統) 탱(竀)이 상서우승(尙書右丞) 김인석(金仁碩), 전주목사 이여림(李汝霖)과 불궤(不軌)를 도모한다고 고하여 정을 거제현에 유배할 때 이일숙도 형부원외랑으로서 일당으로 몰려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