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문보(文甫), 호는 탄옹(炭翁). 이압(李搕)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광하(李光夏)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이집(李㙫)이며, 어머니는 군수 김수빈(金壽賓)의 딸이다.
1714년(숙종 40) 생원시에 합격하고, 1725년(영조 1) 통덕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27년 설서에 이어 이듬해 검열·대교·봉교·전적 등을 역임하였는데, 대교로 있을 때에는 인군에게 필요한 일로 경천(敬天)·휼민(恤民)·전학(典學)·납간(納諫)·임현(任賢)·진강(振綱)의 6개조를 들어 상소하였다.
1730년 정언에 이어, 1731년 지평, 이듬해 병조정랑·문학·필선 등의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였다. 1733년 부수찬·헌납·지평·교리·응교·사복시정 등을 거쳐, 1736년 시독관(侍讀官)·검토관·이조정랑·대사간을 역임하였다.
1737년 공홍감사(公洪監司)·승지에 이어, 이듬해 전라감사로 나갔고, 1740년 공조·형조·호조·예조 참판과 도승지·한성부우윤을 거쳐 대사헌이 되었다. 1742년 평안도관찰사로 나갔으며, 이듬해 예조참판이 되었다.
1744년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승진되고, 이조·병조·예조·형조·공조 판서를 거쳐 지중추부사로 내의원(內醫院)·봉상시(奉常寺)·선공감(繕工監)·선혜청(宣惠廳)·사역원(司譯院)·평시서(平市署)·사복시 등의 제조를 역임하였다.
1746년 경기도관찰사로 나갔으며, 1747년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승계되고 판돈녕부사가 되었다. 비용을 절감하여 국력의 충실에 힘썼고, 불편부당의 자세로 소신껏 진언하였다. 시호는 충정(忠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