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초산(楚山). 초명은 복길(福吉), 호는 소남(韶南). 서울 출생. 1931년 이왕직 아악부원양성소를 졸업하고 이왕직 아악수(雅樂手) · 아악수장 · 아악사(雅樂師)를 지냈고, 광복 후 구왕궁아악부 아악사장(雅樂師長)을 지냈다.
1951년 국립국악원 개원과 더불어 초대원장에 임명되었으며,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장을 겸임하였다. 예술원회원 · 서울대학교음악대학 강사 · 한국국악학회 이사 · 가곡보존회 회장 · 한국정악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김영제(金寗濟) · 함화진(咸和鎭) · 최순영(崔淳永) 문하에서 아악을 배웠으며, 원래 전공은 피리였으나 특히 하규일(河圭一)에게 가곡 · 가사 · 시조를 배워 일가를 이루어 정부로부터 가곡 · 가사의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예능보유자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목은 타고나지 못하였으나 피나는 수련과 정진으로 대성한 가인이었다. 저서에 『가곡보(歌曲譜)』 · 『속 가곡보』 · 『가사보(歌詞譜)』 · 『시조창의 연구』 · 『고금시조선(古今時調選)』 등이 있고, 서울시문화상(1958) · 예술원상(1971)을 각각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