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익성군 이형령(益城君 李亨齡)이며, 선조의 여섯째 아들인 순화군 이보(順和君 李보)에게 입양되었다. 1609년(광해군 1) 진릉군(晋陵君)에 봉하여졌다.
1612년에 대북파는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지지하던 소북파를 제거하려고 무옥을 일으켰다. 황해도 봉산군수 신율(申慄)은 병역을 피하려다 붙잡힌 김경립(金景立)을 체포하여 유팽석(柳彭錫)을 시켜서 무옥을 꾸미게 하였다.
김경립은 이들이 꾸민 각본에 따라 아버지 직재(直哉)의 실직(失職)에 불만을 품은 김백함(金百緘)을 모역의 주모자라고 허위자백하였다. 이로써 김직재·김백함 부자와 김직재의 사위 황보 신(皇甫信) 등이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김백함 자신이 모역의 주모자라고 허위자백하면서, 그들이 왕으로 추대한 인물은 진릉군이라고 진술하였다.
광해군은 당시에 순화군의 장인인 황혁(黃赫)이 신천(新川)에 유배되어 생활하고 있었기에 진릉군이 역모에 가담된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보고 역모죄로 다스렸다.
그리하여 그는 절도에 위리안치되고 뒤에 사사(賜死)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의 형제도 연좌되어 이순경(李順慶)은 강진에, 이희경(李喜慶)은 사천에, 이승경(李承慶)은 흥양에, 이득경(李得慶)은 이이산(李理山)에 각각 정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