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호는 목남(木南). 경기도 고양 출신. 아버지는 진호(軫鎬)이며, 어머니는 김숙경(金淑卿)이다.
1939년 경성중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법학과에서 수학하였다.
광복 후에는 한때 종합잡지 ≪전망 展望≫을 주재하였으며, 6·25 때에는 종군 문인으로 공군에 소속된 창공구락부(蒼空俱樂部)의 일원으로 활약한 바 있다.
또한, 서울이 수복되어 환도가 이루어진 다음에는 조지훈(趙芝薰) 등과 함께 ≪문학예술 文學藝術≫의 시 추천을 맡아보았으며, 1957년에는 한국시인협회에 관계한 바도 있다. 그 뒤 1960년 문공부의 문정관으로 일본에 건너가서 그곳에 눌러앉았다.
그의 문단 활동은 1939년 학부재학 때 ≪문장 文章≫의 추천제에 응모하여 그해 5월호에 시 <풍장 風葬>과 <북극권 北極圈>이 뽑히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때 추천자인 정지용(鄭芝溶)은 그의 작품에 대하여 “패기도 있고 꿈도 슬픔도 넘치는 청춘이라야 쓸 수 있는 시”라고 하면서 “선이 활달하기는 하나 치밀하지 못한 것이 흠”이라는 것과 외국어를 많이 쓴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해 ≪문장≫에 시 <가정 家庭>과 1940년 3월호에 <놉새가 불면>을 발표하였다.
그는 등장 초기부터 경향시의 정치 지향성과 모더니즘계 시에 대하여 모두 반발하면서 그 나름대로의 순수시를 쓰려는 자세를 보였다. 추천완료 소감으로 발표한 <나의 작시설계도(作詩設計圖)>(문장, 1939.9.)에서 이러한 자세를 표명한 바 있다. 그는 과작(寡作)의 시인으로 생전에는 시집을 내지 않았으나 죽은 뒤 1976년 ≪이한직시집≫이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