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8년(숙종 3) 태자부(太子府)의 솔경(率更)이 되었다. 인종 초에 봉어(奉御)로서 시랑 최식(崔湜)과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척준경(拓俊京)을 우봉군(牛峯郡)까지 쫓아가서 달래어 돌아오게 하였다.
1126년(인종 4) 이자겸(李資謙)의 난 직후 정응문(鄭應文)과 함께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신(臣)을 칭하고 상표(上表)하여 ‘공경을 기울이기에 마음을 다할 것’을 약속하고 돌아왔다.
1135년 서경에서 묘청(妙淸)이 반란을 일으키자 서경에 출정하였는데, 서경을 마지막으로 공격할 때에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로서 지석숭(池錫崇), 합문지후(閤門祗候) 전용(全瑢) 등과 함께 군사 2,000명을 거느리고 좌도(左道)가 되어 서경을 함락시키는 데에 공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