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부랑은 고려 의종대에 있었던 부보랑(符寶郎)을 연원으로 1298년(충렬왕 24)에 정제(定制)를 갖추어 인부랑 2인을 두었고, 그 직품도 종6품으로 하였으나 곧 혁파하였다. 이는 이해에 충선왕이 수선(受禪)하면서 설치된 것으로 보아 충선왕의 개혁정치와 관련이 있는 관부라고 여겨진다.
비록 곧 혁파되기는 하였지만 뒤에 상서사(尙瑞司)가 성립되면서 부인(符印)의 업무를 관장하고 있으므로 이와 직접적으로 관련시켜도 좋을지는 의문이나 그 기능상 연관이 있다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