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일에 궁중에서 의식을 행하면서 여러 신하들에게 나누어주었던 것으로 ‘화승(花勝)’이라고도 한다. 이 날 인승을 하사하였으므로 인승절(人勝節)이라고도 하였다.
형태는 사람 모양 혹은 꽃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종류는 재료에 따라 금인승(金人勝)·은인승(銀人勝)·동인승(銅人勝) 등이 있다. 그 연원은 중국에서 전하여진 것으로 보인다.
6세기 중엽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인일에 화승을 만들어 서로 선물을 하는 풍속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중국의 주나라 목왕이 함께 놀았다는 선녀인 서왕모(西王母)가 머리에 꽂고 있던 대승(大勝)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장수와 행복을 비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만드는 방법으로는, 비단을 베어 사람을 만들거나 혹은 금박을 새겨서 인승을 만들어 병풍에 붙이거나 머리에 꽂는다고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그 기록이 처음 나타나는데, 『고려사』 세가(世家) 권19 명종 3년 정월 조에 백관들이 인일을 축하하고 임금이 인승녹패(人勝祿牌)를 하사하였다는 기록과 같은 책 지(志) 권21 예(禮) 9 가례 인일하의조(人日賀儀條)에는 품계에 따라 인승녹패를 나누어준 의식이 적혀 있다.
또한,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 후집(後集) 권2 고율시편에는 인일에 은승을 받고 지은 「인일수은승(人日受銀勝)」(3수)이 실려 있다. 이 시에서 상위품계에서는 은으로 만든 인승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또한 인승의 유래를 살펴볼 수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태종 12년 12월 조에 인일의 하례의식에서 인승녹패를 하사할 것을 장계하자 그대로 좇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연산군 12년 정월 조에도 그와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동국세시기』 정월 인일 조에는 동인승을 각신(閣臣 : 규장각의 벼슬아치)들에게 나누어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인승은 단순한 머리장식품이 아니라 인일의 하례의식에서 주고받던 의식용 물건으로 장수와 복을 비는 뜻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