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몽고인으로 고려에 귀화한 인후(印侯)의 서자(庶子)이다.
음보로 만호를 거쳐 1345년(충목왕 1)에 좌정승이 되었고, 1352년(공민왕 1) 연안부원군(延安府院君)에 봉해졌다.
이 무렵 권세 있는 자들이 기현(畿縣)의 공전(公田)을 사취한 것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인승단이 점유한 것이 더욱 많았다. 이에 전민변정도감(田民辨整都監)을 두고, 권세 있는 자들이 사취한 토지를 회수하고 여러 해의 조세를 징수하니 인승단이 이를 저주하였다.
그 뒤 경연(經筵)에 입시하여 도감의 폐지를 적극 건의하였으나 공민왕이 응하지 않았다. 1353년 다시 좌정승이 되었는데 감찰사(監察司)에서 고신(告身: 임명장)에 서명하지 않으므로 이들을 미워하였다.
뒤에 좌정승직을 파하고 연안백(延安伯)에 봉해졌으며, 1356년 보안(保安)에 유배되어 4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