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대방 ()

인어대방
인어대방
언어·문자
문헌
왜학 당상역관 최기령이 일본어 학습을 위하여 1790년에 편찬한 교재. 일본어학습서.
정의
왜학 당상역관 최기령이 일본어 학습을 위하여 1790년에 편찬한 교재. 일본어학습서.
개설

1790년(정조 14)에 왜학당상역관(倭學堂上譯官) 최기령(崔麒齡)이 편찬한 일본어 학습서로, 일본어를 흘림체[草體]로 쓰고, 한 자 낮추어 한글과 한자를 섞어 해자(楷字)로 썼으며, 사역원에서 사용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역과방목(譯科榜目)』에 의하면, 최기령은 자(字)가 위래(爲來)이고, 계축(1733)생으로 본관은 무주(茂朱)이다. 아버지는 역관 수명(壽溟)이고, 큰형 학령은 왜학교회숭록영부지추(倭學敎誨崇祿永付知樞), 작은형 봉령(鳳齡)은 왜학교회숭록지추(倭學敎誨崇祿知樞)인 역관 집안의 출신이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일성록(日省錄)』에 기록된 내용, 즉 1790년 7월 19일에 사역원에서 올린 계(啓)에 의하면, “몽왜(蒙倭: 몽골과 왜국을 말함) 양학(兩學)의 서적이 미비하여 학습에 어려움이 있은 지 오래더니, 연전에 왜학당상역관 최기령이 『인어대방』 5책을 구입하여 학어자(學語者: 언어를 배우는 자)의 지남(指南)이 되었는데, 그의 주선으로 새로 펴냈다.〔開板成書〕”라고 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그의 나이 57세 때에 펴낸 것으로 추정된다.

서지적 사항

10권 5책. 목판본. 서발(序跋)과 간기(刊記)가 없고, 총 236장에 510종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국내에는 규장각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 유일한 현존본인데, 일본에도 규장각본과는 다른 『인어대방』이 있어, 한국어학습서로 쓰여 왔다.

그 첫째는 교토대학[京都大學]이 소장하고 있는 1859년의 사본인 4권 2책의 『인어대방』이고, 둘째는 쓰시마[對馬島] 사람 우라세[浦瀨裕]의 교정증보(校訂增補)로 1882년에 일본 외무성에서 출판한 9권 3책의 『정정인어대방(訂正隣語大方)』과 그 재간본이다.

교토대학본은 신무라 이즈루[新村出]가 가고시마[鹿兒島]의 나와시로가와[苗代川]에 거주하는 한국인 후예로부터 구입한 필사본 2책으로, 각각 26장, 28장으로 되어 있다.

2권 끝에는 “주박평관 안정육년말 무신월사야(主朴平寬 安政六年(1859년)末 無神月(10월)寫也)”라고 씌어 있다.

한글과 한자가 섞인 글을 주문으로 삼고 그 오른쪽에는 가다카나와 한자를 섞은 일본어를 달아놓았다.

외무성본은 9권을 천(天)·지(地)·인(人) 3책으로 나누고, 첫머리마다 “대마주포뢰유교정증보 방주보박번승인쇄(對馬州浦瀨裕校正增補 防州寶迫繁勝印刷)”라고 하였다. 장수는 천 33장, 지 26장, 인 36장으로 되어 있다. 한글을 주문으로 하고, 왼쪽에는 필요한 한자를, 오른쪽에는 일본어를 달아놓았다.

권두에는 “예전에 쓰시마 사람들이 공사사무(公私事務)로 조선인과 대화한 것과 왕복서간(往復書簡)을 모은 것으로, 언제 누가 엮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후쿠야마[福山] 모씨(某氏)라고 구전되어 있기도 한다.”라는 내용의 서언(緖言)이 있다.

이 책도 『교린수지(交隣須知)』와 마찬가지로, 옛 말투로 편지나 대화에 불편한 점이 있어 경성의 학사를 불러 근세의 어법으로 수정하였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각 권 첫머리에 제목이 붙어 있지 않다. 그런데 규장각본 권1의 “우리게 첩해신어(捷解新語)라 ᄒᆞ고 일본말 ᄇᆡ호ᄂᆞᆫ ᄎᆡᆨ이 읻ᄉᆞᆸ더니……”의 내용이 외무성본 권2에 그대로 들어 있는 것과 기타의 내용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발상(發想)하여 편찬되고, 일본에서는 거꾸로 한국어학습에 이용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규장각도서 소장본을 교토대학 국어국문학회(京都大學 國語國文學會)와 태학사에서 1988년에 영인하여 간행하였다.

내용

본문은 일상적인 교훈으로부터 상담(商談)에 이르기까지 길고 짧은 이야기가 한 장에 평균 2개씩 들어 있다. 그리고 구개음화된 표기가 비어두, 어두에서 모두 나타나며, 어두의 된소리는 ㅅ계 합용병서와 각자병서(ㄲ, ㄸ, ㅆ)가 모두 쓰인다.

모음과 모음 사이의 유기음은 연철하여 표기한 경우도 있고, 중철하거나 재음소적 표기를 택한 것도 존재하여 세 가지 표기법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당대의 문헌 자료에서 종성의 ‘ㅅ’과 ‘ㄷ’을 대부분 ‘ㅅ’으로 통일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에는 반대로 ‘ㄷ’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당시 왜학서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이 밖에도 주격조사 ‘-가’가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고, 공동격 조사가 모음 아래에서도 ‘-와’가 아닌 ‘-과’로 표기된 예가 ‘ᄌᆡ조과’, ‘그과’에서 보인다.

참고문헌

『일성록(日省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이본인어대방·교린수지(異本隣語大方·交隣須知)』(京都大學國文學會, 1967)
「인어대방 제본의 비교 고찰」(신충균, 『일본학보』45-1, 2000)
「인어대방의 국어학적 연구」(남기탁, 『어문연구』11, 1983)
「隣語大方解題」(安田章, 『隣語大方』, 京都大學國文學會, 1963)
『朝鮮語學史』(小倉進平, 刀江書院, 1940)
관련 미디어 (3)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