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는 대체로 인형을 연상하고, 또 어린이 장난감을 생각해서 인형극을 마치 어린이극 쯤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일찍부터 어린이만을 위한 연극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인형극 또한 당초 어린이극이 아님은 자명하다. 그만큼 연극의 표현수단으로 쓰는 인형은 인간을 축소하고 환상화한 것으로서 완구 아닌 예술작품이라 볼 수 있다. 일찍이 우리 조상들이 인형을 환(幻)으로 표현했던 것은 매우 적절하다.
당초 인형극이 어느 때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며, 다만 그에 대한 학자들의 무성한 주장만 있을 뿐이다. 그 첫째가 19세기 독일 연극학자 피셸(Pischel,R.)의 주장으로, 기원전에 인도 북부에 살던 집시가 처음 하였다는 학설이다. 그들이 인형을 처음 만들어 연극을 하였는데 그것이 동서로 퍼져서 아시아와 유럽, 지중해 주변국에 분포되었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인도와 중국에서 각각 발생하여 인도인형극은 주로 서쪽으로 흘렀고, 중국인형극은 대만·한국·일본 등 극동으로 퍼졌다는 주장으로, 중국의 류모재(Lu Mau Thai)라든가 나금당(羅錦堂) 같은 학자가 대표적이다. 지중해 주변국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인형극이 서력기원 전에 발생한 것은 확실하며그 종류 또한 많았다.
가령, 인도의 인형극만 하더라도 라자스탄(Rajasthan)·오릿사(Orissa)·약사가나인형극(Yakshaghanapuppets)·장대인형극·장갑인형극 등 6종류가 있었는데, 이는 중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즉, 중국의 ≪몽화록 夢華錄≫이라는 책을 보면 현사괴뢰(懸絲傀儡)·주선괴뢰(走線傀儡)·장두괴뢰(杖頭傀儡)·약발괴뢰(藥發傀儡)·육괴뢰(肉傀儡)·수괴뢰(水傀儡) 등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렇게 많은 종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기교가 발달해서 표현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체로 서양에서는 줄인형극과 장갑인형극이 발달하였고, 동양에서는 손인형극과 그림자인형극이 발달하였다. 이들 가운데 그림자인형극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남부와 이란·이라크·터키 등 중동에서 성행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은 자기들이 400여년 전에 만들어낸 분라쿠(文樂)라는 대형 인형극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19세기까지만 하여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랑예인들이 인형극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형극은 자연 민속적일 수밖에 없었고, 조종자들은 천대받고 가난하였다. 그러다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인형극도 하나의 연극으로 크게 발전함으로써 직업화의 길을 걸었고 유랑 아닌 정착을 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동양에서보다도 서양에서 특히 눈부신 발전을 하였다. 그리하여 프랑스·소련·캐나다·미국 및 동구권 여러 나라들에서는 수십 개 내지 수백 개의 직업적인 인형극단들이 생겨나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전승되는 민속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 한 종류만 있었으나 1970년대에 접어들어 서양에서 유행하는 줄인형극의 실험이 있었던 바, 조용수(趙容秀)가 그 첫번째로 시도한 인형극인이었다. 그 뒤로 심우성(沈雨晟)·이경희(李京嬉)·안정의(安正義) 등이 줄인형극 또는 재래방식의 창작인형극을 시도하였다.
따라서, 현재는 10여 개에 가까운 인형극단이 활동하고 있으며, 인형극을 전문적으로 공연하는 소극장도 생겨났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현대인형극단들은 여러 면에서 초보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선 인형제작기술이 낙후되어 있다. 한 나라의 예술인형은 민족의 이미지를 지녀야 하는데, 우리의 현대인형들은 미학적으로 세련되지 못하고 조종술이 서툴며, 창작극본이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기껏해야 설화나 고전소설이 아니면 외국동화가 주내용이 되다 보니 자연 인형극은 어린이용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근자에 와서 강원도 춘천시가 국제인형극제를 해마다 실시하여 우리 나라 현대인형극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중이다.
프랑스나 구미 선진국 인형극이 인간의 존재문제에까지 파고들 정도로 심오하면서도 예술적으로 정교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음에 비하여 우리 인형극은 매우 낙후되어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