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공보(臨時政府公報)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일종의 관보(官報)로서 헌법과 각종 법령의 공포를 비롯하여 예산 · 조약 · 인사 · 기타 공무에 관한 소식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공식적 기관지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공보를 발행하기 시작한 것은 1919년 9월 3일 제1호를 발간하면서부터였다. 1944년 12월 20일자로 제83호까지 발행된 것이 확인된다.
임시정부공보는 임시정부의 조직과 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기록을 수록하고 있는 까닭에 임시정부의 실상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가장 기초적인 사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모두가 온전하게 남아 있지는 않다. 2004년에 들어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공보를 수집 · 정리하여 자료총서『대한민국임시정부공보』 총19집을 펴냈다. 호외를 포함하여 모두 67개호를 찾아 수록하였다.
임시정부 외무부장 조소앙(趙素昻)이 가지고 들어온 문서를 영인한 『한국독립운동사자료집ㆍ조소앙편(韓國獨立運動史資料集ㆍ趙素昻篇)』(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이 소장하고 있던 ‘이화장문서’를 정리하여 출판한 『운남이승만문서(雩南李承晩文書)』(연세대 현대한국학연구소, 1998), 임시정부 주석 김구(金九)의 관련 자료를 집대성한 『백범김구전집(白凡金九全集)』(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1999), 임시정부 수립 초기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 안창호(安昌浩) 관련 자료를 정리한 『도산안창호전집(島山安昌浩全集)』(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0) 등에 임시정부공보가 산발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상해에서 발행된 『독립신문』과 미주에서 발행된 『신한민보(新韓民報)』도 임시정부공보를 그대로 전재하거나 일부 내용을 보도하기도 하였다. 이밖에 김자동(金紫東)이 보관해 오던 임시정부 및 한국독립당 관련 문서에도 유일본에 속하는 22개호의 임시정부공보가 포함되어 있다.
지금까지 수집된 임시정부공보는 일련 번호로 발행된 83호 가운데 57개호와 호외로 발행된 19개호를 포함하여 모두 76개호에 이른다. 아직도 미처 수집하지 못한 발행 호수가 적지 않은 만큼 우선은 자료의 발굴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상하이[上海]에 수립되어 운영될 때에는 임시정부공보를 제외하고도 기관지 『독립신문(獨立新聞)』이 따로 발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1932년 5월 윤봉길(尹奉吉) 의사의 의거 이후에 항저우로 이동하게 되는 이동시대(1932~1940)에는 전혀 신문을 발행하지 발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임시정부의 항저우 시대(1932.5.16∼1935.11.24)에는 특히 임시정부공보가 공보의 주요 수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