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완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숙종 때, 세자모해의 주동자 처벌을 상소한 임보의 형으로, 당시 사건으로 임보와 함께 국문을 받다 처형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706년(숙종 32)
정의
조선 숙종 때, 세자모해의 주동자 처벌을 상소한 임보의 형으로, 당시 사건으로 임보와 함께 국문을 받다 처형된 문신.
개설

세자(뒤에 경종) 모해설의 발설자인 윤순명(尹順命)의 처형과 윤증(尹拯)을 처벌할 것을 청하는 내용의 소를 올린 충청도 유생 임보(林溥)의 형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01년(숙종 27) 세자모해의 낭설이 있었으나 당시의 초사(招辭: 신문에 의한 죄인의 답변)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1706년 임보의 상소로 재차 거론되어 국청에 참여하였던 인물 중 동지의금부사 유지발(柳之發), 낭청 강이상(姜履相)·여필중(呂必重)·박태춘(朴泰春) 등이 문초를 당하였는데, 이 때 사실의 유무와 허실을 규명하기 위하여 임완의 3형제도 국문을 당하였다.

그 결과 당시의 초사에는 의도적으로 발설하지 않았음이 밝혀져 발설자 임보는 흑산도에 유배되었다가 죽음을 당하였고, 임완은 2차례의 형벌을 받은 뒤 역시 죽음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집필자
신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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