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字)는 사인(士寅), 호는 폐추(敝帚).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임준(任晙), 어머니는 능주구씨(陵州具氏)로 구강(具剛)의 딸이다. 이황(李滉)을 사숙(私淑: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았으나 스스로 그의 학덕을 본받아 학문을 닦음)하였다.
1657년(효종 8)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662년(현종 3)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합격하여 기천(基川)·명주(溟州)의 군수를 거쳐 목사(牧使)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강하여 부모의 뜻에 따라 학업에 열중하였고, 관직에 있을 때는 항상 백성의 질고(疾苦)를 생각하여 부역(賦役)을 경감해 주고 빈한(貧寒)을 구휼하였다.
임홍량은 당시 성리학(性理學)이 융성하여 그에 대한 시비가 자주 일어남을 보고 성리학의 연구를 포기하고 오직 시문(詩文)의 연구에 힘을 써서 아순(雅馴: 문장의 품이 높고 점잖은 모양)하다는 평을 받았다. 저서로는 『폐추유고(敝帚遺稿)』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