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진(柳致眞)이 광복 직후에 쓴 역사극. 1947년 8월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에 의하여 공연되었다. 5막으로 된 이 낭만사극은 외세와 분단문제를 우회적으로 묘사한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쓸 당시는 미·소 양국이 남북으로 갈라서 군정을 펴고 있던 때였으므로 한사군시대(漢四郡時代)와 비슷한 상황으로 보고, 작자는 한사군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작품을 전개하였다.
한나라 무제가 위씨조선을 멸한 뒤 조선땅에다 낙랑·진번·임둔·현도 등 사군을 두고 통치하였는데, 고구려가 일어나 한나라의 세력을 몰아내고 모든 촌락을 함락시킨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았다.
고구려가 사군 중에서 한나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또 가장 강력하였던 낙랑을 멸망시키는 이야기로서, 낙랑의 신고(神鼓)인 자명고에 얽힌 낙랑공주와 고구려 호동왕자와의 비련이 골자를 이룬다.
낙랑공주가 사랑 때문에 자명고를 찢음으로써 조국이 패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자신도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다는 낭만극이다. 항상 사실(史實)에 충실한 작자는 이 작품도 ≪삼국사기≫에서 소재를 가져와 로맨스를 아기자기하게 꾸며넣었다.
그러나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한나라의 배척과 조국통일이라는 주제에 역점을 두었기 때문에 사실과는 동떨어지는 이야기로 흘러간 느낌도 없지 않다. 왕자와 공주가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은 외세배척과 민족단결을 바탕으로 한 조국통일의 염원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이는 미·소 양국의 군정에 대한 간접적 비판으로 볼 수가 있다. 그리하여 외세, 특히 소련세력을 물리치고 민족통일을 이룩할 때까지 투쟁하여야 한다고 주인공의 입을 통해 외치기도 한다. 이처럼 사실에 입각한 사극으로 쓴 이 작품은 광복 후의 복잡미묘하고 혼란한 상황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계몽사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