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문집인 『이재유고(頤齋遺稿)』(1829)의 권26 잡저에 실려 있다. 분량은 판본에 따라 3∼5장이다. 이 글은 중국한자음인 화음(華音)과 한국한자음인 동음(東音)의 차이를 대조하고 동음의 체계를 밝히려는 목적으로 쓰였다.
먼저, 중국에서 자모(字母)를 설정하게 된 역사와 그 뒤의 자모수의 변천사항을 말하고, 이어서 자모 및 운모(韻母)를 다루고 있다.
우선, 훈민정음이 『홍무정운(洪武正韻)』의 31자모를 본받아서 자모수를 줄였는데, 영조시대에 우리나라에서는 14자모만 사용되고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초성 31자모는 중국어의 표기에 필요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속용(俗用) 14자모면 충분하다고 하였고, 그 속용의 초성 14자모를 ‘ㄱ, ㅋ, ㅇ, ㄷ, ㅌ, ㄴ, ㅂ, ㅍ, ㅁ, ㅈ, ㅊ, ㅅ, ㅎ, ㄹ’ 등과 같이 배열하였다.
중성은 운모음(韻母音)을 적는 글자로 중국어의 표기에는 33자가 필요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속중용 19자면 충분하다고 하였다. 그 속용의 중성 19자는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 ㅘ, ㅝ, ㅐ, ㅔ, ㅚ, ㅟ, ㅢ’ 등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ㅙ가 제외된 것이 특색이다.
종성으로는 중국어의 자음 운미(韻尾)로 쓸 수 있는 13자를 들고, 속용으로 8자를 들었는데, 종래의 8종성인 ‘ㄱ, ㅇ, ㄷ, ㄴ, ㅂ, ㅁ, ㅅ, ㄹ’과 같다.
그런데 초성의 14자모는 더 줄일 수도 있는 것인데, 그것은 속용에서 ㄷ과 ㅈ, ㅌ과 ㅊ이 서로 혼동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는 당시 이미 구개음화현상이 나타났음을 말한 것이다.
다만, 관서지방에서는 이들을 구별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일찍이 박성원(朴性源)·신경준(申景濬)도 지적한 바로서, 관서지방에서는 아직 구개음화현상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