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모산성 ()

건축
유적
북한 평안남도 평성시에 있었던 삼국시대 고구려 평양성 북쪽 방위를 담당한 석축 성곽. 산성.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38호.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북한 평안남도 평성시에 있었던 삼국시대 고구려 평양성 북쪽 방위를 담당한 석축 성곽. 산성.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38호.
개설

자모산성(慈母山城)은 옛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을 지키던 위성들 가운데에 하나로, 평안남도 평성시 자모산 일대에 위치한다. 둘레가 약 5㎞에 달하고, 높이는 4m이다. 성내에는 우물이 1개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성벽 윗부분에 활이나 총을 쏘도록 만든 여장(女墻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북한의 사적 제27호로 지정되었다가 국보 문화유물 제38호로 변경되었다.

내용

자모산성은 주봉(主峰)에서부터 북쪽 산봉우리까지는 내성(內城)을 쌓은 나성(羅城) 형태이다. 나성지역의 남문을 중심으로 그 동쪽 능선 500m 구간과 서쪽 능선 1,100m 구간에만 성벽을 쌓고 각각 치(雉)를 3개소씩 설치하였다. 나머지 구간에는 동쪽에 10개소, 서쪽에 2개소씩 보루를 두고 연결하였다. 비교적 유구가 잘 남은 보루는 세로 4m, 가로 5m의 직사각형이다.

성문은 7개이고, 여장 부분에는 약 1∼1.5m 간격으로 활이나 총을 대고 쏜 구멍인 사혈(射穴)이 규칙적으로 정연하게 나 있다. 성 둘레 주변마다 높은 곳 13개소에 장방형 또는 둥근 원형으로 된 망대를 설치하였던 자리가 지금도 남아 있다.

기록에 의하면, 전투시에 지휘처로 사용하던 만자루가 성벽에 연결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이 만자루 자리는 대체로 성벽보다 높고 두껍게 돌을 쌓고 성벽 밖으로 볼록 나와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성은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를 횡행하며 탐관오리를 징계한 명종 때의 협도(俠盜) 임꺽정(林巨正)이 이 산성을 거점으로 활동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1636년(인조 14)의 병자호란 때에는 인근 읍민 수만 명이 이곳으로 피난하여 목숨을 구했던 기록도 있다.

참고문헌

『대동지지(大東地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북한의 문화유적 순례』(양태진, 백산출판사, 1995)
북한문화재자료관(north.nricp.go.kr)
집필자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