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3월 24일 구국제민(救國濟民)의 이념하에 민주정치의 확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복지사회건설에 이바지할 것을 목표로 창당된 보수야당이다.
대표 정만조(鄭萬朝)를 비롯한 발기인 36명으로 1963년 1월 29일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으나, 그 해 4월 대표자의 사임에 따라 후임으로 이종윤(李鍾潤)을 선출하여 본격적인 창당작업에 들어갔다.
창당준비위원회는 1963년에 19개 지구당, 1965년 3개 지구당, 1966년에 3개 지구당을 결성하고, 대통령 및 국회의원총선거의 해인 1967년에 들어와서야 19개 지구당을 추가결성함으로써 겨우 44개 법정지구당수를 확보하여 4월 27일 정당등록을 할 수 있었다.
정강은 완전한 민주정치, 자유경제체제의 확립, 반공태세의 확립 등을 주요내용으로 보수적 이념정당임을 나타내고 있으나, 정책상에서는 새로운 제안을 보이기도 했다. 이것은 중립국가와의 선린관계, 농어촌진흥책, 신생활운동의 제안 등의 정책제안이 입증한다.
그러나 내세운 정강·정책과는 달리 영세한 군소정당으로 활동상 두드러진 것은 거의 없었다. 제6대대통령선거에는 선거일에 임박하여 정당등록을 마칠 수 없었기 때문에 후보자공천을 하지 못하였으며, 제7대국회의원선거에서는 지역구후보 8명, 전국구후보 5명을 공천하였으나 모두 낙선하였다.
1971년의 제7대대통령선거에서는 이종윤총재를 후보로 지명하여 선거에 임한 결과 1만7823표를 얻고 낙선하였다. 선거 직후 법정지구당수를 확보, 유지하지 못하여 1971년 5월 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정당등록이 취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