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문묘(文廟)를 비롯하여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전사청(典祀廳)·신문(神門)·홍전문(紅箭門) 등이 있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과 동무·서무에 우리 나라 18현(十八賢) 및 중국 94현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여 왔다. 1950년대 이후의 사항은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