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산은 조선후기 서얼, 승려 세력과 함께 봉기하여 거사를 도모하려 한 주모자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며 숙종 연간에 활동한 인물이다. 광대 출신으로, 광대놀이를 잘하고 용맹하여 무리를 모아 도둑의 괴수가 되었다. 처음에는 황해도 일대에서, 이후에는 평안남도 양덕 일대에서 그리고 함경도 두만강 입구의 서수리로 달아나 활약한 것으로 보인다. 1696년에 서얼 출신 이영창이 금강산의 승려 운부 및 장길산과 손잡고 거사를 도모하려 한다는 역적모의 고변까지 있었으나 끝내 잡히지 않았다. 홍길동·임꺽정과 함께 조선의 3대 도둑으로 꼽힌다.
광대(廣大) 출신으로 광대놀이를 잘하고 용맹이 있었다 한다. 이런 탓으로 도당을 모아 도둑의 괴수가 되었다.
처음에는 황해도 일대에서 활약해 조정의 큰 걱정거리가 되니 신엽(申燁)을 황해도감사로 삼아 체포하게 하였다. 이에 그의 도당 한 명을 잡아 장길산의 은신처를 알아내고 체포하려 했으나 여당(餘黨: 나머지 무리)만을 잡았다. 다시 여러 고을의 군사를 징발해 각기 요소를 지키고 밤을 타 은신처로 쳐들어갔으나 미리 염탐하고 모두 달아났다.
1692년(숙종 18) 무렵 장길산 일당은 평안남도 양덕(陽德)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포도청의 장교를 보내 잡으려 했지만 또 놓쳤다. 그리하여 그 문책으로 양덕현감을 파직하고 이웃 고을에 체포를 독려하였다. 그 뒤 그의 행방이 묘연했으나 함경도 두만강 입구에 있는 서수라(西水羅)로 달아나 활약한 것으로 보인다.
1696년 역적모의의 고변(告變)이 있었는데, 서류(庶類) 이영창(李榮昌)이 금강산에 있는 승려 운부(雲浮) 및 장길산과 손을 잡고 거사를 도모하려 했다는 것이다.
곧 당시 장길산은 서수라나 벽동 등지에서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마상(馬商)을 가탁(假託)하기도 하고 운산(雲山)의 군기(軍器)를 빼앗기도 하면서 활약했다 한다. 이 부대가 승려 세력과 함께 봉기해 서울로 쳐들어올 계획이라 하였다.
이 사건은 뒤에 노론과 남인들이 권력싸움을 벌이면서 무고라 해 무고자들만 처벌하기도 하였다. 당시 숙종은 이런 하교를 내렸다.
“극적(劇賊: 큰 도둑) 장길산은 몹시 사나워 여러 도를 왕래하면서 도당을 많이 모으고 있다. 이미 10년이 경과했는데도 아직 잡지 못했도다. 지난번 양덕에서 군대가 포위해 잡으려 했지만 끝내 잡지 못했으니 그 음흉함을 알만하다.”
그리고 각 관찰사와 병사에게 엄명을 내려 잡게 했고 많은 상금을 걸었다. 그러나 끝내 잡히지 않았다. 이익(李瀷)은 조선의 3대 도둑으로 홍길동(洪吉童)·임꺽정(林巨正), 그리고 장길산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