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복겸 ()

고전시가
인물
조선후기 『옥경헌유고』를 저술한 문인.
이칭
익재(益哉)
옥경헌(玉鏡軒)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17년(광해군 9)
사망 연도
1703년(숙종 29)
본관
흥성
출생지
거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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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옥경헌유고』를 저술한 문인.
개설

본관은 흥성(興城). 자는 익재(益哉), 호는 옥경헌(玉鏡軒). 거령현(현,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 장개세(張蓋世)이고,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장담(張膽)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서 시문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며 일생을 마쳤다.

54세 때인 1670년(현종 11)에는 흉년이 들어 민생이 어려워지자 조정에 「구페소(救弊疏)」를 올렸다. 상소를 통해 환상(還上 : 백성에게 빌려준 곡식을 가을에 받는 일) 제도를 본래의 구휼 목적에 맞게끔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 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선비들의 기강을 바로잡을 것을 역설했다.

만년에는 고향에 있는 고산(孤山)과 서호(西湖) 가에 불고정(不孤亭)과 옥경헌(玉鏡軒)이라는 정자를 짓고 검소하고 한가로운 삶을 살았다. 이때 삶을 소재로 삼아 전체 10수로 된 국문시가 연시조 「고산별곡(孤山別曲)」을 쓰기도 했다.

내용은 번거로운 세상사를 잊고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시와 술을 즐기며 지내는 작자의 멋스런 삶을 그렸다. 자연에 동화되려는 성격이 두드러진다. 또 이 작품의 서문을 보면 “달 밝고 바람 맑은 밤이나, 꽃 피고 술 익을 때에 아이들로 하여금 이를 부르게 하였다(月白風淸之夜/花開酒熟之時/使童子歌之)”는 언급이 있어 작품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다. 이로 보아 당시에 실제로 아이들에게 가르쳐 노래로 부르게 했음을 알 수 있다.

연시조 「고산별곡」 외에도 300여 수의 한시와, 10여 편의 글을 남겼다. 저서로는 그의 이러한 글들을 모은 『옥경헌유고』 4권 2책이 있다.

참고문헌

『옥경헌유고(玉鏡軒遺稿)』
『옥경헌(玉鏡軒)』
「고산별곡 연구(전일환, 『국어국문학』제102호,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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