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복추 ()

사미헌문집
사미헌문집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유학의 전통성 유지에 힘쓴 영남 지방의 유학자로, 「태극도설문답」, 「숙흥야매잠집설」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경하(景遐)
사미헌(四未軒)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15년(순조 15)
사망 연도
1900년(고종 37)
본관
인동(仁同)
출생지
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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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유학의 전통성 유지에 힘쓴 영남 지방의 유학자로, 「태극도설문답」, 「숙흥야매잠집설」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경상북도 예천 출신. 본관은 인동(仁洞). 자는 경하(景遐), 호는 사미헌(四未軒).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8대손이고, 아버지는 장굉(張浤)이며, 3세 때 조부의 명에 따라 큰아버지 장관(張寬)에게 입양되었다. 조부 각헌(覺軒) 장주(張儔)로부터 학업의 기초를 닦았다.

19세기 후반의 정치·사상적인 격변기를 살아가면서 폭넓은 저술 활동으로 후배 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던 영남의 손꼽히는 재야 유학자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59년(철종 10) 장복추는 그 동안 가다듬었던 유학의 기본 골격을 정리한 후, 앞으로의 학문 방향을 설정하면서 효(孝)·경(敬)·충(忠)·신(信)의 4가지 기본적인 덕목을 제대로 닦지 못했다는 자책의 뜻으로 거처하던 집에 ‘사미헌(四未軒)’이란 당호를 달고 평생을 통해 수행 정진하겠다는 경계로 삼으며 자기 수양과 성찰을 중시하였다.

1862년 삼남(三南)에 민란이 발생하여 인동고을까지 그 여파에 휩쓸리자, 몸소 현장에 뛰어들어 난민(亂民)들을 설득하여 안정을 회복시켰다. 장복추의 학문적 성과와 명성이 조야(朝野)에 널리 알려지자 1881년(고종 18) 경학(經學)으로 천거되어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장원서별제(掌苑署別提)·경상도도사(慶尙道都事)·절충장군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龍驤衛副護軍) 등에 제수되었으나 끝내 나가지 않고 초야에 머물면서 학문 연구에 힘썼다.

장복추는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를 모시던 우산서원(愚山書院)이 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자 그 복건(復建)을 앞장서 주청하고, 1884년(고종 21) 의제개혁(衣制改革)이 시행되자 즉시 이를 성토하는 상소를 올릴 만큼 유학의 전통성 유지와 실천에 힘쓴 정통 유학자였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이 터져 당시 인동 일원의 유림들이 거의(擧義)를 요청하자, 장복추는 군사에 어두운 서생이 무모하게 참여할 경우 목적을 이루기 전에 화만 자초할 뿐이라는 자정적(自靖的) 신념에 따라 완곡히 사절하였다.

장복추는 일정한 스승 없이 독학으로 공부하여 영남 유학에서 일가를 이루었고, 계속 재야에 머물며 후진 양성에 주력하여 4백여 명의 제자를 배출하면서 예학(禮學)과 경학(經學) 등에 많은 저술을 남겼다.

학문세계와 저서

장복추는 독실하고 근면한 자세로 초야에 은거하며 오로지 도학(道學)의 실천적 수행과 성리학의 중심 과제에 대한 분석과 저작에 일생을 바쳤다. 장복추의 학문적 논의의 정밀함은 당시 주변에서 한 학파를 형성하였고, 또한 성리학의 새로운 접근과 해석을 시도하고 있던 일군의 학인들과 교유하며 자신의 입론을 견실히 강화시켜 나갔다.

장복추와 사상적 논의를 나누었던 학자로는 이진상(李震相)을 비롯하여 그 문도(門徒)들인 허유(許愈)·곽종석(郭鍾錫)·김진호(金鎭祜)·이승희(李承熙)·이정모(李正模)·장석영(張錫英) 등이 있다. 장복추는 이들과의 친분에도 불구하고 그들 학파가 주창했던 학설의 접근 방식과 해석에 다른 입장을 견지하면서 퇴계학파의 전통적 견해에 치우친 자세를 보여주었다.

또한 장복추는 이진상이 주장한 심즉리설(心卽理說)이 결국 왕양명(王陽明)의 설과 마찬가지로 심(心)을 이(理)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고 혹독하게 비판하면서 한주 문도들과 격렬한 논쟁을 전개했던 이진상의 사돈인 허훈(許薰) 등과 빈번한 독서 강론과 문답을 통해 학문의 미심쩍은 부분을 보완해 나갔다.

인간적 친분과 학문적 경향이 일치하지 않았지만, 이들과 큰 갈등 없이 자신의 독자적인 학문 분야를 고수했던 장복추의 풍모는 학문에 대한 논점이 상이할 경우, 인간적인 부분까지 희생시켜야 했던 당시 학계의 일반적인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매우 신선한 충격을 주는 동시에 장복추의 학문에 대한 궁극적 목적이 무엇이었던가를 일깨워주는 장면이다.

저서로는 성리학의 기본적인 쟁점에 속하는 태극의 개념 파악을 주목한 「태극도설문답(太極圖說問答)」, 사부모(事父母)·우형제(友兄弟) 등 9조목에 걸쳐 제가(齊家)의 주요 문제를 뽑아 그 실천 방안을 제시한 「훈몽구잠(訓蒙九箴)」, 『성학십도(聖學十圖)』의 「숙흥야매잠」에 관련된 주해(注解)들을 모아 체계적으로 집약한 뒤, 그것을 정리하여 퇴계의 철학을 심화·발전시킨 「숙흥야매잠집설(夙興夜寐箴集說)」, 어린아이들의 초학교육, 그 가운데서도 특히 윤리 도덕 교육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해설한 「훈몽요해(訓蒙要解)」·「동몽훈(童蒙訓)」, 그리고 「삼강록간보(三綱錄刊補)」, 『금오산유록(金烏山遊錄)』, 『사미헌문집(四未軒文集)』 등이 있다.

그 밖의 저서로는 경학과 예학에 관한 핵심적인 사항 58조를 골라 요약·정리한 「문변지론(問辨至論)」과 「사서계몽(四書啓蒙)」·「가례보의(家禮補疑)」·「독서쇄록(讀書瑣錄)」·「월천강의(月川講義)」·「모원당강의(慕遠堂講義)」·「흑방강의(墨坊講義)」 등이 있다.

참고문헌

『사미헌문집(四未軒文集)』
『한주전서(寒洲全書)』
『면우집(俛宇集)』
『물천집(勿川集)』
『회당집(晦堂集)』
『한계유고(韓溪遺稿)』
『유학근백년』(금장태 외, 박영사, 1984)
『한국사상사논고』(박종홍, 서문당, 1977)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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