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선 전기의 문신 문정공(文靖公) 심은(深隱) 이수(李隨, 1374∼1430)와 관련된 서첩류, 후손인 사류당(四留堂) 이복원(李復元)과 그의 아들 이기찬(李基燦)과 문우들의 서간, 부조묘와 사우 창건에 관련되는 자료와 고문서 등 17건 91점이다. 전라남도 장성국 북이면 만무리 죽림사에 소장되어 있다.
『문정공서술첩(文靖公敍述帖)』은 5책으로 1책[宮]은 이시수(李時秀) 등 17인, 2책[商]은 김조순(金祖淳) 등 10인, 3책[角]은 홍석주(洪奭周) 등 16인, 4책[徵]은 정동유(鄭東愈) 등 30인, 5책[羽]은 조용진(趙瑢鎭) 등 7인으로 모두 70인의 문정공에 대한 문장작품이다. 문정공은 이수의 시호이다.
『현동첩(玄同帖)』 4책은 정동유의 서간 16장 등 99장 합첩, 『현방첩(賢坊帖)』은 순천부사 정동원(鄭東元) 등 7인의 서간 15장, 『회동서첩(會洞書帖)』은 태인현감 정완용(鄭琓容) 등 10인의 서간 29장, 『동현첩(同玄帖)』은 정석원(鄭錫源)의 서간 23장, 『풍고외서첩(楓皐外書帖)』은 김조순 등 7인의 서간 24장, 『영백서첩(嶺伯書帖)』은 경상감사 윤광안(尹光顔) 등 5인의 서간 21장, 『밀암서첩(密巖書帖)』은 정우용의 서간 18장, 『종애서첩(鍾厓書帖)』은 윤정현(尹定鉉) 등 2인의 서간 21장, 『진신서첩(搢紳書帖)』 9책 등이며, 25책에 나타난 인물은 모두 183인이다.
그리고 1804년(순조 4)의 133명의 계원으로 부조묘 보수, 강당 건립, 서원을 창설하여 청액할 것을 목적으로 한 『종계안』, 부조묘 건립, 족보와 『문정공실기』 간행 때의 지출명세인 『하기초출기(下記抄出記)』, 1802년 내각활자로 간행된 『문정공실기』, 부조묘 건축시의 기록인 『외손구청물재기(外孫求請物材記)』, 문정공의 부인 풍양조씨(豊壤趙氏)로부터 이기찬의 처가 서원곽씨(西原郭氏)까지 직계만 정리한 『외가보(外家譜)』, 『사유당유고』 등의 문적이 있다. 그리고 고문서는 1783년의 명문 · 수표 · 의송 · 원정 · 통문 · 서장 등 18세기 후반∼19세기의 것으로 57점이며, 전답매매 · 산송(山訟) · 서원관련 내용 등이다.
죽림사는 이수를 배향한 사우로, 1590년(선조 23)에 호남의 유림들이 전라도 진원현 죽림동(현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에 창건했다가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져 1814년 장성군 북이면 만무리로 이전 · 중건하였다.
이수를 비롯하여 그 후손들의 가계, 교유관계, 경제상황 등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