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울진(蔚珍). 자는 경수(景受). 일명 응기(應祺)라고도 한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고, 1586년 무과중시에 급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직 감찰로서 해서초토사(海西招討使) 이정암(李廷馣)의 휘하에서 군관(軍官)으로 활약하였다.
1592년 8월 말 해주에 주둔한 왜장 구로다(黑田長政)가 도내에 있는 왜군을 모아 대병력으로 연안성을 침범할 때 화살을 쏘아 적장 한 사람을 사살함으로써 성내 군민(軍民)의 사기를 높였고, 성의 동문을 지켜 적의 침입을 막았다.
적장 구로다로부터 한(漢)나라의 번쾌(樊噲)와 장비(張飛)와 같은 장수라는 평을 받았다. 군공(軍功)으로 배천군수가 되어 연안별장을 겸하고 군사 500명으로 계속 연안성을 지켰다.
정유재란 때는 창녕현감으로 방어사 곽재우(郭再祐) 휘하에 들어가 조전장으로 창녕 화왕산성(火旺山城) 방어에 참여하였다. 그 뒤 부사 등을 지내고 1604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고 공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연안현충사(顯忠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