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철산 출신. 1920년 5월경 정원범(鄭元範)·정치민(鄭致敏) 등 동지와 같이 독립운동을 목표로 향리에서 대한청년숭의단(大韓靑年崇義團)을 조직하고 부단장이 되었다.
의용군을 모집, 만주독립군 본부에 파견함과 동시에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와 독립운동단체 등에 제공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송치되었다. 1921년 12월 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평양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5년형이 확정되어 서울 마포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마침내 1925년 11월 6일 만기 옥중생활을 마치고 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도 “또다시 독립투쟁하는 것만이 내가 살 길이며, 독립이 완성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 운동을 펴겠다.”라고 결심한 뒤 만주로 건너가 독립투쟁중 1938년 8월 4일 죽었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