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풍산군·신흥군, 동북쪽은 삼수군, 남쪽은 함주군, 평안남도 영원군, 북쪽은 평안북도 후창군, 서쪽은 평안북도 강계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6°56′∼127°48′, 북위 40°10′∼41°15′에 위치하며, 면적 5,112.67㎢, 인구 8만 5836명(1943년 현재)이다. 7개 면 148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장진면 경하리이다.
개마고원 지대로서 대부분의 지역이 험준한 고지대에 발달되어 있다. 서쪽은 낭림산맥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서 희색봉(稀塞峰, 2,185m)·아득령(牙得嶺, 1,479m)·와갈봉(臥碣峰, 2,262m)·동백산(東白山, 2,096m) 등의 높은 산지가 솟아 있다.
남쪽은 부전령산맥(赴戰嶺山脈)이 동서로 뻗어 유린산(有麟山, 1,925m)·문암산(門巖山, 1,852m)·황초령(黃草嶺, 1,200m) 등이 솟아 동해 방면으로 급경사를 이룬다. 북쪽은 비교적 완경사를 이루어 1,000m 내외의 고원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장진강(長津江)과 부전강(赴戰江)이 고원 지대를 개석하며, 주변 산악 지대에서 발원하는 여러 하천과 합류하여 북쪽으로 흐른다. 그리고 그 유역에 협소한 평지가 발달되어 이 지역의 주요 생산지와 거주지가 되고 있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로 한서의 차가 매우 심하다. 겨울철이 길고 여름철이 짧은 현상을 나타내며, 특히 겨울 기후는 중강진(中江鎭)과 함께 우리 나라의 한극(寒極)을 이룬다.
연평균 기온 2.5℃, 1월 평균 기온 -20℃, 8월 평균 기온 19℃, 연 강수량 700㎜이다. 한랭 기후이므로 발아(發芽)와 개화(開花) 시기는 평지대보다 약 1개월이 늦고 첫서리는 9월 초순에, 첫눈은 10월 초순에 내린다.
[고 대]
이 군에서는 구석기 시대뿐 아니라 신석기·청동기·초기 철기 시대의 유물··유적도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인접한 함주군에서 청동기 시대의 유물·유적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청동기 시대에는 이곳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군은 남옥저에 속하여 있다가 고구려가 흥기함에 따라 56년(태조왕 4) 그 영토로 편입되었다. 244년(동천왕 18)에 위장 관구검(毌丘儉)의 침공으로 국내성이 함락되자 동천왕이 잠깐 이곳에 머물렀다가 동해안의 매구(買溝:지금의 문천)로 피난하였으므로 이 군은 한때 전란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삼국이 정립하여 쟁패를 거듭하고 있을 때 신라진흥왕은 한강 유역을 점령한 여세를 몰아 함경남도까지 진출하였다. 황초령과 마운령의 진흥왕순수비로써 신라의 세력이 지금의 함주군·이원군에까지 미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당시 이곳도 신라 영토로 편입되었을 것이다. 발해 건국 후 이곳은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에 속하였다.
[고 려]
고려 건국 후 안변·영흥·함주방면을 고려 영토로 편입하였고 973년(광종 24)에 화주·장평진(長平鎭)·박평진(博平鎭)·고주(高州)에 각각 성을 쌓아 이 지방의 방어에 대비하였다. 따라서, 당시 장진은 고려 영토로 편입되었을 것이 확실하다.
후에 여진의 완안부(完顔部) 세력이 대거 남하하여 숙종 때 함흥평야 일대에서 잦은 충돌이 일어나자, 1107년(예종 2) 윤관(尹瓘)이 기병 중심으로 조직한 별무반(別武班)으로 지금의 함흥 일대를 점령하여 여진을 축출하고 함주를 비롯하여 영주(英州)·웅주(雄州) 등지에 9성을 수축하고 남방 민호를 옮겨 부실하게 하였다. 9성은 2년 뒤에 반환함으로써 함흥·영흥 일대의 땅이 또 여진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그 뒤 금나라가 몽고에 쇠망하면서 영흥·함흥 일대는 다시 고려에 편입되어 연해명주도(沿海溟州道)라 칭하였으나 몽고가 이곳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설치하여 통치하자 이 군도 몽고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1356년(공민왕 5) 공민왕이 반원정책을 써서 화주 일대를 수복하여 쌍성총관부를 혁파하고 함경남도 지방을 대체로 수복하였다. 1391년(공양왕 3) 본래 허천부(虛川府)였던 곳을 갑주(甲州)라 칭하고 만호부를 두어 이 군을 그 예하에 편입하였다.
[조 선]
1413년(태종 13)갑주를 갑산군으로 개편하였다. 1461년(세조 7)갑산군을 군사상 중요한 곳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시키고, 갑산에 속하였던 삼수만호(三水萬戶)를 독립시켜 군으로 삼았는데, 이때 이곳은 삼수군에 예속되었다.
장진은 본래 함흥부의 한후구비사(漢厚仇非社)로서 1665년(현종 6) 장진보수책(長津堡樹柵)을 설치하고 별장을 배치하였다. 1667년 관찰사 민정중(閔鼎重)이 보(堡)를 설치할 것을 건의하여 장진책(長津柵)을 두고 순영(巡營)에서 별장을 파견하였다.
1758년(영조 34) 약 1리 떨어진 곳으로 보를 옮겼고, 1784년(정조 8)에 함경도감진사(咸鏡道監賑使) 이재학(李在學)의 건의로 보를 혁파하고 절제진(節制鎭)으로 삼았다. 이듬해 7월 진을 지금의 서한면 적수리왕인봉(旺人峰) 아래로 옮겼다.
1787년 관찰사 정민시(鄭民始)가 읍으로 승격시킬 것을 청하자 이해 8월 변지독진도호부(邊地獨鎭都護府)를 설치하였다. 1815년(순조 15) 다시 진을 영덕산(永德山) 밑으로 옮겨 별해진(別害鎭)으로 삼았다.
1843년(헌종 9) 백성이 이산(離散)하여 읍의 형태를 이루지 못한다고 하여 진첨사(鎭僉使)로 환원시켰다가 1859년(철종 10) 개척민이 모여들자 관찰사 윤치수(尹致秀)의 청을 받아들여 다시 독진도호부로 복구시켰다.
[근 대]
1897년 삼수의 남부를 나누어 장진군으로 독립시켰다. 황초령·설한령(雪寒嶺)·한대령(閑臺嶺) 등 세 영의 물이 합류하여 북쪽은 삼수군의 신갈파진(新乫坡鎭) 사이를 이어 압록강에 흘러가기 때문에 장진이라고 불렀다. 신설 당시의 행정구역은 읍사·부민사 등 12사로 이루어져 있었고 호구는 2,254호, 8,733명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동상면이 신흥군으로 이관되면서 10개 면으로 개편되었고, 그 뒤 다시 군내면·상남면 등 7개 면으로 축소되었다. 1938년 군청 소재지를 군내면 읍상리에서 신남면 경하리로 이전하고, 신남면을 장진면으로 고쳤다.
1933년부터 장진강에 수력전기공사와 장진저수지공사를 기공함에 따라 함흥을 기점으로 한 장진선을 부설하게 되어 군내의 막대한 임산물·광산물·농산물을 군외에 다량 반출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이 군의 산업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구도 급속히 증가하여 1927년의 호구가 1만 840호, 6만 9425명이던 것이 1943년에는 1만 4751호, 8만 5836명으로 늘어났다.
이 군에는 다른 군에 비하여 유물·유적이 많지 않다. 이곳에서 함주군 관내로 들어가는 관문인 황초령은 이미 신라 시대부터 중요한 요충지였으며, 과거에 국보로 지정되었던 황초령신라진흥왕순수비는 현재 함흥본궁역사박물관에 이전, 전시되고 있다.
1667년(현종 8) 지금의 중남면 구진리에 장진책을 설치하였는데 1758년(영조 34) 화재로 회진되어 인근으로 옮겼다고 하지만, 소재지는 기록에 정확히 남아 있지 않다.
상남면 양거수리의 별청산책(別靑山柵)은 임진왜란 때 함경감사 등이 고수한 성이라고 전하여지고 있으며, 현재도 토성의 유지가 남아 있다. 동하면 장진강 유역에 홍농영(弘農營)의 유적이 있고, 북면 장진강 유역에도 친기아(親騎衙)의 군영지 겸 성지가 남아 있다.
지역적인 특성상 귀양지였으며, 읍 소재지 적부 논란 등으로 여러 번 승폐·이전된 관계로 교육 활동은 아주 부진하였다. 그러나 교육열은 상당히 높아 서당 교육이 성행하였고, 야학이나 강습소가 많이 설립되어 이곳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졌다. 1933년 현재 서당은 모두 66개소이다.
1937년 장진공업보통학교 등 공립보통학교 5개교와 사립 중동학교(中東學校)가 있었으며, 1942년 현재 교육기관은 중학교는 없고 국민학교 15개교가 있다. 종교 상황은 불교 사찰은 없고, 개신교 교회는 각 면에 1개 정도, 천도교는 몇 개의 포교소가 있으며 대체로 소규모이다.
개마고원 지대에 위치한 한랭 지대로서, 기후와 지형적인 특성으로 임산자원과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농업은 평야가 적어 산간 경사지를 중심으로 밭농사와 화전(火田) 위주의 경작이 이루어진다. 전체 경지면적은 133.5㎢이고, 논이 4.2㎢, 밭이 129.3㎢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감자·귀리·보리·콩·옥수수·조 등이며, 소규모의 축산과 야채 재배도 이루어진다. 원시림이 무성하여 임산자원이 이 지역 제1의 부원(富源)이 되어, 압록강재(鴨綠江材)의 채벌지가 된다. 주요 임산물은 낙엽송·삼나무·홍송(紅松) 등이다. 또한, 특산물로는 백화피(白樺皮)·뚜깔·기류(杞柳) 등이 있다.
임산물 수송은 교통이 편리한 장진면과 중남면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제재목과 원목은 장진선을 이용하여 함흥·흥남 방면으로 수송된다.
또한, 교통이 불편한 서한·상남·동문·동하·북면 등지에서는 원목을 장진강 본류에 집결시켜 뗏목으로 만들어 압록강으로 보낸다. 광산자원의 매장량과 산출량이 많아 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주요 광산물은 금·사금·은·구리·흑연 등이다. 금광은 동문면 삼포리에 삼포광산, 장진면 서흥리에 덕동광산, 중남면 복동리에 복동광산 등이 있다.
사금광은 동문면 삼포리에 삼포광상(三浦鑛床), 장진면 연상하리에 연상하리광상, 북면에 장진강안광산(長津江岸鑛山) 등이 있다. 그 밖에 은광은 동문면 조만리, 흑연광은 동문면 월상리, 옥광은 동하면 여문하리 등에 분포하고 있다.
교통망은 함흥을 기점으로 황초령을 넘어 장진을 지나고 낭림산맥을 통과하여 강계·후창 방면에 이르는 2등도로가 발달되어 있으며, 북쪽으로는 장진강 계곡을 따라 삼수군의 신갈파진에 이르러 압록강 연변으로 통하는 국도와 연결되는 지방도가 있다.
또한, 장진선은 산업도로서 이 지역 및 인접 지역의 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장진호반의 사수(泗水)에서 함흥까지 연결되어 있고, 황초령에는 특수 시설인 인크라인이 설치되어 있다. 장진호에는 정기적으로 선박이 운항된다. 주요 관광지로는 상남면 갈전리에 인공 호수인 장진호가 있고, 북면 장동리에 온천이 있다.
[동문면(東門面)]
군의 서북부에 위치한면. 면적 804.34㎢, 인구 1만 6184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동문거리이다. 1937년까지 군내면 읍상리가 군청 소재지였으나 수력발전 공사로 수몰 지구가 되면서 1938년 신남면(지금의 장진면) 경하리로 이전하였다. 그 뒤 군내면은 동문면으로 개칭되었다.
장진강의 중류 유역에 발달하여 서쪽은 낭림산맥의 와갈봉·맹부산(猛扶山, 2,214m), 북쪽은 희색봉, 남쪽은 백산(白山, 2,077m)·온통산(溫通山, 1,760m) 등의 산지가 솟아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산간 고지대이므로 화전농업이 이루어지며, 주요 농산물로는 감자·귀리·대마·옥수수 등이 생산된다.
천연 임산자원이 풍부하며 제재목과 원목은 동문거리역을 통하여 운반된다. 광업은 삼포리의 금광과 사금광, 조만리의 은광, 월상리의 흑연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교통은 강계∼동문거리 간의 철도와 함흥∼신갈파진 간의 2등국도가 주요 교통로이며, 장진강을 수운으로 이용하여 산간 지방으로서는 비교적 편리한 편이다.
동문거(東門巨)·읍상(邑上)·설관(雪館)·거무소(巨武所)·주파(周坡)·장성(長城)·용평(龍坪)·서초(西初)·서중(西中)·서상(西上)·읍하(邑下)·연당(連堂)·재아(才阿)·잠탄(潛灘)·속사(束沙)·월상(越上)·삼포(三浦)·조만(鳥蔓)·영상(嶺上) 등 19개 이가 있다.
[동하면(東下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155.22㎢, 인구 5,964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능구리이다. 부전강의 중류 유역에 발달하여 동쪽은 두운봉(頭雲峰, 2,487m)·대암산(大巖山, 2,205m), 서쪽은 백산(白山, 1,745m)·연화산(蓮花山, 2,355m) 등의 산지가 솟아 있고, 그 사이의 곡저를 부전강이 흐른다.
동쪽 허천강(虛川江) 유역의 분수령과 서쪽 장진강 유역의 분수령이 면계(面界)를 이루어, 지형이 좁고 남북으로 긴 형태이다.
하류에 발달한 북부 지역은 여러 지류의 계곡 평야가 발달하여 주요 생활 터전을 이룬다. 대부분의 지역이 1,200m 이상의 고랭 지대이므로 화전농업이 이루어지며, 주요 농산물로는 감자·귀리·옥수수 등의 잡곡과 석이(石茸)·아편·약초·벌꿀 등이 생산된다.
천연임산자원이 풍부하며, 주요 목재들은 강물을 이용한 뗏목 운반에 의존한다. 교통은 부전강에서 서쪽으로 3개의 지류가 계곡을 형성하고, 강변을 따라 소도로가 발달하여 함흥∼신갈파진 간의 자동차 교통로로 이용된다.
능구(陵口)·서어수(西於水)·운산(雲山)·자진(紫眞)·황철(黃哲)·반석(盤石)·입석(立石)·여운상(如雲上)·여운중(如雲中)·여운작(如雲作)·사득(泗得)·양부(良富)·안기(安基)·소통기(小通氣)·대통기(大通氣)·신흥(新興)·신부(新富)·진파(眞坡)·신원동(新院洞)·원동(院洞)·후동(後洞) 등 21개 이가 있다.
[북면(北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744.57㎢, 인구 1만 2953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대흥리이다. 장진강의 중류 유역이 발달하여 동쪽은 백산, 서쪽은 신덕산(新德山, 1,584m), 남쪽은 연화산 등의 산지가 솟아 있고, 지형이 남북으로 긴 형태이다. 북동쪽은 장진강이 곡류하며 이곳에 형성된 좁은 계곡 평야가 주요 생활 터전을 이룬다.
대부분의 지역이 1,200m 이상의 고랭 지대이므로 농업은 화전농업이 이루어지고, 주요 농산물로는 옥수수·감자 등의 잡곡이 생산된다. 천연 임산자원이 풍부하며, 주요 목재들은 장진강 수로를 이용하여 운반된다.
이상리에는 장진강제2댐이 설치되어 동문거리를 거쳐 독로강 계곡으로 유역 변경 발전을 한다. 광업은 고암리∼장항리의 장진강안광산을 중심으로 사금이 채취된다.
교통은 면을 통과하는 지방도가 강구포에서 신갈파진에 이르는 국도에 연결되어 있고, 장진호에는 정기적으로 선박이 운항한다. 장동리에 온천이 있으나 교통이 불편하다.
대흥(大興)·고암(高巖)·원갈(元葛)·잠파(潛坡)·이상(梨上)·연화(蓮化)·안도(安堵)·중강(中江)·향청(香淸)·사백(沙栢)·수침(水砧)·동안(東安)·서안(西安)·구정(九丁)·갈전(葛田)·갈점(葛店)·교동(橋洞)·장흥(長興)·형제(兄弟)·인산(仁山)·진목(眞木)·산양(山羊)·신방(新防)·구전(口田)·장항(獐項)·장동(長洞)·동심(東深)·직동(直洞) 등 28개 이가 있다.
[상남면(上南面)]
군의 중부에 위치한 면. 면적 877.86㎢, 인구 1만 4343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덕실리이다. 장진강의 중상류 유역에 발달하여 동쪽은 연화산·소남산·대남산, 서쪽은 와갈봉·대홍산(大紅山, 2,152m)·고석곡산(古石谷山, 1,871m)·천의물산(天宜物山, 2,032m), 북쪽은 백산·온통산 등의 산지가 솟아 있어 전체적으로 1,500m 이상의 산지 고원을 형성한다.
면 중앙부를 장진강이 북류하며 협곡을 이루고, 좌우로 2, 3개의 지류가 발달하여 이곳 주민의 주요 생활 터전을 이룬다.
주요 농산물로는 감자·옥수수 등의 잡곡이 생산된다. 갈전리에 장진강제1댐이 설치되어 있고, 속사리에 보조 댐을 설치하여 이 호수의 물을 황초령을 넘어 동해 사면으로 역류시켜, 1933∼1936년에 약 30만㎾의 발전을 하였다.
교통은 장진강 국도와 동하면 간의 국도가 주요 간선도로이다. 특히, 장진강변의 국도는, 북부에 댐 건설로 인하여 호수를 형성하여 다소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양거수리에 별청산책의 성지가 있다.
덕실(德實)·문악(文岳)·양거수(梁巨水)·연화(蓮花)·마등(馬登)·황포초(黃浦初)·황포중(黃浦中)·황포측(黃浦側)·창평(倉坪)·삼흥(三興)·와갈(臥碣)·서덕(西德)·운수(雲水)·속사(束沙)·몌물(袂物)·몌물중(袂物中)·몌물측(袂物側)·대남(大南)·천의수(天宜水)·갈전(葛田) 등 20개 이가 있다.
[서한면(西閑面)]
군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483.73㎢, 인구 9,806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유담리이다. 장진강 상류의 서사면 지역에 발달하여 서남쪽은 소백산(小白山, 2,184m), 남쪽은 동백산, 서북쪽은 천의물산, 남동쪽은 덕동산, 동쪽은 사양지산(蛇陽地山, 1,469m) 등의 산지가 솟아 있다. 장진강에서 갈라진 여러 지류가 동류하며 동쪽이 낮아 장진호를 이룬다.
본래 산간벽지로 개발이 뒤졌으나 장진강수력발전소와 더불어, 사설 개척 철도의 부설로 근대화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지역이 1,300m 이상의 고랭 지대이므로 화전농업이 이루어지며, 주요 농산물로는 감자·귀리·옥수수 등의 잡곡과 아편·대마·석이버섯·약초·봉밀 등이 생산된다. 천연 임산자원이 풍부하며, 제재목은 장진선을 이용하여 함흥 등지로 운반된다.
교통은 동쪽의 저지대가 댐으로 수몰됨에 따라 불편한 편이다. 따라서, 동부 지역은 수로를, 서북부 및 남부 지역은 소규모의 도로를 이용한다.
과거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던 유담리의 열목어(熱目魚)가 있다. 유담(柳潭)·구읍(舊邑)·교동(校洞)·매향(梅香)·청담(淸潭)·서목(西木)·적수(赤水)·북수(北水)·한하(閑下)·서중(西中)·연수(囦水)·문암(門巖)·한상(閑上)·신흥(新興)·신포(新浦) 등 15개 이가 있다.
[장진면(長津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501.92㎢, 인구 1만 4100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하갈우리이다. 1938년 신남면은 장진면으로 개칭되었다.
장진강의 상류 유역에 발달하여 서쪽은 동백산, 남쪽은 마대산(馬垈山, 1,745m)·황초령·응봉(鷹峰, 1,314m)·오봉(五峰, 2,004m), 동북쪽은 북산(北山, 2,070m)·삼덕치(三德峙, 1,449m), 동쪽은 덕동산(德洞山, 1,653m) 등의 산지가 솟아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고랭 지대이므로 화전농업이 이루어지며, 주요 농산물로는 감자·귀리·옥수수·대마 등이 생산된다. 광업은 서흥리의 덕동광산에서 금이, 연상하리의 계곡을 중심으로 사금이 생산된다. 교통은 장진선이 부설되어 물자와 여객 수송이 이루어진다.
하갈우(下碣隅)·서흥(西興)·상갈우(上碣隅)·경하(京下)·도내(島內)·홍문(紅門)·수철(水鐵)·신흥(新興)·서치(西峙)·신중(新中)·용흥(龍興)·대남(大南)·대흥(大興)·연직(연直)·신상(新上)·만풍(萬豐)·연상하(囦上下)·신하(新下)·중흥(中興)·수남(水南)·재원(在院)·고흥(古興)·고토(古土)·하마대(下馬垈)·소민태(小民泰)·화피(化被)·부성(富盛)·송정(松亭)·상평(上坪)·병무(丙武) 등 30개 이가 있다.
[중남면(中南面)]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595㎢, 인구 7,569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사수리이다. 장진강 상류의 우측 경사면에 발달하여 동쪽 지역은 부전강 유역과의 경계선에 연화산맥이 남하하여 대남산·유린산·수침산·고대산(高大山, 1,768m)·오봉, 서쪽은 사양지산·덕동산, 남쪽은 삼덕치·북산 등의 산지가 솟아 있고, 북서로 경사진 형태의 고랭 지대이다.
대부분의 지역이 원시림이 울창한 미개발 지역이었으나, 1933년 사설 개척 철도가 개통되고 1936년 수력발전이 이루어지면서 크게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장진강제1댐이 상남면 갈전리에 설치되어 있어 면의 중앙부는 넓은 저수지를 이루고 있다.
1,200m 이상의 고랭 지대이므로 화전농업이 이루어지며, 주요 농산물은 감자·귀리 등의 잡곡과 아편·대마 등이 생산되고 소·면양을 사육한다. 천연 임산자원이 풍부하며 주요 목재들은 장진선을 이용하여 운반된다. 교통은 인접 군인 신흥군 간의 도로를 이용한다. 유적으로는 구진리에 장진책이 있다.
사수(泗水)·고별우(高別隅)·통지수(通知水)·신대(新垈)·신흥(新興)·문천(文川)·장흥(長興)·복동(福洞)·뇌동(雷洞)·백암(白巖)·풍류(豐流)·내동(內洞)·장항(獐項)·하평(荷坪)·구진(舊津) 등 15개 이가 있다.
1952년 12월 장진면·중남면·서한면의 전부와 상남면의 일부 지역으로 면 행정단위를 폐지하고 이 단위로 분할, 통폐합하여 군의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다. 그 밖에 군내면·북면과 성남면 일부로는 낭림군을 신설하고, 동하면은 부전군으로 이관하였다.
1961년 3월 신풍리를 폐지하여 황초리에 통합시켰으며, 1967년 10월 황초리를 분리하여 반풍노동자구를 신설하고, 황초리는 황초노동자구가 되었다. 1974년 8월 해방노동자구를 양지노동자구로 개칭하고, 1982년 10월 중화리를 유달리로 개칭하였다.
현재 함경남도 북서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부전군·신흥군, 서쪽은 자강도 용림군과 평안남도 대흥군, 남쪽은 영광군, 북쪽은 낭림군과 접하여 있다. 동경 126°55′∼127°29′, 북위 40°10′∼40°48′에 위치하며, 면적은 1,892㎢, 인구는 3만 6000여 명이다(1995년 현재).
행정구역은 장진읍과 황초(黃草)·양지(陽地)·만풍(滿豊) 등 3개 노동자구, 도내(島內)·신대(新垈)·축전·백암(白巖)·신흥(新興)·풍류(豊流)·청량(淸兩)·갈전(葛田)·속사(束沙)·몌물(袂物)·용호(龍湖)·서목(西木)·임산(林産)·유담·양묘·늡수 등 16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장진읍이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대의 하나인 장진고원에 위치하며,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지면서 분지를 이루고 있다. 북부는 연화산(2,355m)이 솟아 있는 연화산맥, 서부는 천의불산(2,032m)·낭린산(2,186m) 등이 솟아 있는 낭림산맥, 남부는 고대산(1,766m)·황초령(1,206m) 등이 솟아 있는 부전령산맥에 의해 막혀 있다.
장진강과 그 지류인 신대천·신흥천·백암천·구읍천 등이 군 중심부를 북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중류 지역에 장진호가 조성되어 있다.
주요 기반암은 화강편마암과 화강암이며, 토양은 산악갈색산림토·산악표백화갈색산림토·높은산습초원토 등이 분포되어 있다. 기후는 비교적 추운 곳으로 일교차가 심하다.
연평균 기온 1.4℃, 1월 평균 기온 -18℃, 8월 평균 기온은 17.4℃이며, 첫서리는 9월 중순, 마감서리는 6월 초순에 내린다. 연평균 강우량은 756㎜이며, 장진호의 영향으로 안개 일수가 많다.
산림은 군 넓이의 90%로서 임산자원이 풍부하다. 이깔나무·분비나무·가문비나무 등 한랭 지대 수종들이 주를 이루고, 진펄 지대에는 고위치습초원군락이 펼쳐져 있다.
그 밖에 고사리·고비·참나물·돌배·들쭉·오미자·족두리풀·단너삼·당귀·만삼 등 산채와 약재 등이 다양하게 생장하고 있다. 또한, 곰·멧돼지·사슴·노루·삵·오소리·다람쥐 등의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꿩과 산비둘기가 많다.
이 군은 풍부한 지하자원과 수력자원·산림자원을 갖추고 있어 부존자원에 의한 산업이 발전되고 있다. 농경지는 군 전체 면적의 48%로서 밭이 대부분이며, 고랭지 농업이 발전되었다.
주작물은 감자로 도내에서 제일 많이 생산되고, 그 밖에 귀밀·콩·옥수수·밀·아마·약초 등이 장진강과 그 지류 유역에서 경작되고 있으며, 이 지역은 중요한 아마 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풍부한 초지 자원을 배경으로 종축장, 목장들이 설치되어 있다. 가축은 양·소·토끼를 비롯한 돼지·닭이 사육되고 있으며, 꿀벌을 많이 치고 있다.
임업은 메물·중남·신포·백암임산사업소를 중심으로 도내 원목 생산량의 25%를 생산하고 있으며, 장진호와 철도를 이용하여 수송되고 있다. 장진읍과 양지노동자구에는 대규모 제재소가 있으며, 합판 공장·목재공장 등 목재와 관련된 공장들이 설치되어 있다.
장진호에는 잠수어양식사업소가 있어 열목어·정장어·붕어·버들치 등을 양식하고 있으며, 또한 장진호의 물을 황초령 넘어 영광군으로 역류시켜 전력 생산에 이용하고 있다. 주요 지하자원은 연·아연·금·은·몰리브덴 등으로 삼포금광·덕동광산·복동광산 등에서 채굴하고 있다.
교통망으로는 군내에 장진선(함흥∼장진)이 장진호까지 부설되어 있는데, 협궤철도로서 주로 임산물 수송에 이용되고 있으며, 황초령에서 강삭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함흥시, 자강도의 용림군·남린군, 평안남도 대흥군을 등지로 연결되는 도로가 있다. 장진호는 넓이 46.08㎢, 길이 17.5㎞외 큰 인공 호수로서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관광 명소로 이름이 나 있으며 군내의 수상 교통에도 이용되고 있다.
관북 지방 내륙 교통의 관문이었던 황초령에 진흥왕순수비가 있었으나, 현재는 함흥역사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장진고등중학교·건설고등중학교 등이 있다. → 낭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