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의궤 ()

유교
문헌
조선시대 왕위 계승권자의 태(胎)를 묻는 의례 절차와 태실의 조성 과정을 기록한 의궤.
이칭
이칭
안태의궤(安胎儀軌), 안태등록(安胎謄錄)
정의
조선시대 왕위 계승권자의 태(胎)를 묻는 의례 절차와 태실의 조성 과정을 기록한 의궤.
개설

조선시대 원자와 원손과 같은 왕위 계승권자의 태를 묻는 의례 절차와 태실 조성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서명은 『원자아기씨 안태등록[元子阿只氏安胎謄錄]』 또는 『원자아기씨 안태의궤[元子阿只氏安胎儀軌]』이다. 현전하는 장태 의궤는 모두 6건으로,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5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1건이 소장되어 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치러진 원자와 원손의 장태 의례를 상세하게 살필 수 있다.

편찬/발간 경위

왕과 왕세자의 혼인을 담당하는 가례도감이나 상장례를 담당하는 국장도감에서 왕실 의례를 마친 후에 따로 의궤청을 설치하여 작성하는 의궤와 달리, 원자와 원손의 장태 의례에 관한 기록인 장태 의궤는 태실을 조성한 지역에서 필사한 후 자물쇠를 갖춘 의궤궤에 담아 서울과 지방의 담당 관서로 보내어 보관되었다. 1783년(정조 7) 경상도 예천군에 문효세자의 태를 안치한 기록인 『원자아기씨 안태등록』에는 원자와 원손의 태실 조성을 마친 이후에 어람 등록 1책과 의궤 4책을 작성하는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당시 문효세자의 태실이 예천에 조성되었으므로, 어람 등록 1책과 의궤 4책은 예천에서 차출한 등록 서사인 1명과 책장이 편찬하였다. 이 때 작성된 의궤 4건은 예조 1건, 본감(관상감) 1건, 감영 1건, 본관(예천군) 1건으로 각 기관에서 나누어 소장하였다. 장태 의궤와 달리 장태 등록은 왕이 보는 어람용으로 작성되었으며, 종이의 종류와 장식, 궤의 종류 등에서 차이를 보였다. 원손의 장태 등록은 왕이 보는 어람용 등록과 왕세자가 보는 예람용 등록을 각 1부씩 작성하였다.

서지적 사항

1783년 문효세자의 태실 조성에 관한 『원자아기씨 안태등록』(奎13977)은 1책 9장이며, 1790년(정조 14) 순조의 태실 조성에 관한 『원자아기씨 안태등록』(K2-2908)은 1책 7장이다. 1809년(순조 9) 효명세자(익종)의 태실 조성에 관한 『원자아기씨 안태의궤』(奎13969)는 1책 7장이며, 1827년(순조 27) 헌종의 태실 조성에 관한 『원손아기씨 안태등록』(奎13971)은 1책 9장이다. 규장각에 이본이 1건 더 존재한다(奎13972). 1858년(철종 9) 철종의 원자 태실 조성에 관한 『원자아기씨 안태등록』(奎13974)은 1책 9장이며, 1874년(고종 11) 순종의 태실 조성에 관한 『원자아기씨 안태등록』(奎13975)은 1책 9장이다.

내용

조선 후기 왕자녀의 장태 업무를 담당한 관상감에서는 ‘태봉등록(胎峯謄錄)’ 또는 ‘태봉치부(胎峯置簿)’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 전국 각도의 감사가 조사해서 올린 태봉 성책을 기초로 전국 각지의 태봉 후보지를 1등, 2등, 3등으로 나누어 관리하였다. 태봉 후보지는 왕자녀의 왕위 계승 여부와 적서 여부에 따라 3등급으로 나뉘었다. 원자와 원손과 같은 왕위 계승자는 1등 태봉, 왕비 소생인 대군과 공주는 2등 태봉, 후궁 소생인 왕자와 옹주는 3등 태봉으로 등수와 우열이 미리 구분되었다.

장태의궤에는 원자와 원손의 태를 묻을 태봉의 선정 과정을 시작으로 태실 조성을 마치고 안태사와 배태관 등 담당 관원들이 숙배하기까지 모든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장태 일정의 선정과 별단과 같은 기본 방침, 장태 의례와 태실 조성에 필요한 잡물과 인력을 장흥고·전의감·호조·제용감·병조 등 서울의 담당 관사와 태실이 조성될 지방의 각 도에 분정한 내역, 궁 안에 보관되어 있던 태를 안태사 일행이 모시고 지방으로 내려갈 때의 절차와 태를 묻은 절차, 후토제와 태신(胎神) 안위제에 사용한 축문과 제사 의식 등이 포함되었다.

의의와 평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치러진 원자와 원손의 장태 의례와 태실 조성 과정을 상세하게 살필 수 있다.

참고문헌

『국역 안태등록』(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조선 왕실의 안태와 태실 관련 의궤』(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조선시대 출산과 왕실의 ‘장태 의례’─문화적 실천 양상과 그 의미」(김지영, 『역사와 세계』 45, 2014)
「조선 왕실의 장태 의식과 관련 의궤」(김호, 『한국학보』 29-2, 2003)
집필자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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