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무장(武章), 호는 뇌헌(磊軒). 경상북도 영일 출신. 1895년(고종 32)의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斷髮令)을 계기로 을미의병이 전국적으로 봉기하자, 1896년 영일에서 1차거의, 항일투쟁을 개시하였다.
그 뒤 일제가 1905년 을사오조약을 강제로 체결, 국권을 침탈함을 보고, 김재홍·김복선 등과 함께 재기를 결의하고, 이듬해 5월 300여 명의 의병을 모집, 그 의병장에 추대되었다.
그리하여 주로 영일군내의 죽장·흥해·청하 등지에서 활약함으로써 부근의 정환직(鄭煥直)·신돌석(申乭石) 의병진과 교각지세(矯角之勢)를 이루었다. 그뒤 1909년 일본경찰에 붙잡혀,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언도받았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