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인경(仁敬), 호는 성재(誠齋). 아버지는 참봉 장훈(張薰)이며, 어머니는 울산박씨(蔚山朴氏)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경연(李景淵) 등과 의병을 일으켜 박봉수(朴鳳壽)를 대장으로 삼고, 스스로 우익장(右翼將)이 되어 함월산성(含月山城)과 경주 금오산(金鰲山) 등지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1594년 전공으로 인하여 장흥고직장(長興庫直長)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용양위부사정(龍驤衛副司正)을 거쳐 부사과에 올랐다. 1597년 동래·울산·장기현감을 역임하였고, 이듬해 훈련원판관, 이어서 장례원사평을 지냈다. 1606년 형조정랑이 되어 쇄환사(刷還使) 여우길(呂祐吉)을 따라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저서로는 『성재실기』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