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는 소설이 수적으로 증가하였다. 향유층이 확대되어 소설은 점차 대중적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소설을 읽어 주고 일정한 보수를 받던 직업적인 낭독가가 등장하였다.
낭독가 중에는 부유한 가정을 찾아다니며 소설을 읽어주고 보수를 받았던 「요로원야화기」의 김호주(金戶主) 같은 부류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도시를 중심으로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을 택하여 자리를 잡고 앉아 소설을 읽어주고 일정한 보수를 받던 전기수와 같은 부류가 있었다.
조수삼(趙秀三)의 『추재집(秋齋集)』 기이편(紀異篇)에 전기수에 대한 기록이 전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기수는 동문 밖에 살았다. 언과패설인 「숙향전」·「소대성전」·「심청전」·「설인귀전」 등과 같은 전기를 구송하였다. 월초 1일은 첫째 다리 밑에 앉고, 2일은 둘째 다리 밑에 앉고, 3일은 배오개에 앉고, 4일은 교동 입구에 앉고, 5일은 대사동 입구에 앉고, 6일은 종루 앞에 앉는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갔다가 7일째부터는 그 길을 따라 내려온다. 내려왔다가는 다시 올라가고,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그 달을 마친다. 다음 달도 또 그렇게 하는데 재미있게 읽어주기 때문에 주위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빙 둘러 싼다. 전기수는 책을 읽다가 아주 긴요하여 꼭 들어야 할 대목에 이르러서는 문득 읽기를 멈춘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다음 대목을 듣고 싶어서 다투어 돈을 던진다. 이것을 요전법(돈벌이 하는 방법)이라고 한다.(傳奇叟: 叟居東門外 口誦諺課稗說 如淑香 蘇大成 沈淸 薛仁貴等傳奇也 月初一日坐第一橋下 二日坐第二橋下 三日坐梨峴 四日坐校洞口 五日坐大寺洞口 六日坐鍾樓前 溯上旣 自七日沿而下 下而上 上而又下 終其月也 改月亦如之 而以善讀 故傍觀匝圍 夫至最喫緊甚可聽之句節 忽默而無聲 人欲聽其下回 爭以錢投之曰 此乃邀錢法云).”
전기수는 소설의 상업화 가능성과 향유층의 저변을 확대시킴으로써 소설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