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11,283㎡. 무덤의 지름 12.5m, 높이 3.8m, 면적 1,130㎡. 무덤은 경사진 지형을 이용해 외양을 흙으로 덮은 둥근 봉토분[圓形封土墳]이다.
이 능은 광복 전에 두 차례 도굴당했고 1981년에도 도굴당할 뻔했으나 주민들이 사전에 알아 미수에 그친 적이 있다. 이러한 일때문에 능의 정비가 필요하게 되어 1984년 9월국립경주박물관에서 봉분의 주변을 발굴 조사해 완전한 규모를 밝히게 되었고, 아울러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 정비하였다.
무덤의 밑 둘레를 따라 너비 30㎝, 길이 10∼100㎝의 잘 다듬은 장대석(長臺石)을 3단으로 쌓아올린 다음, 그 위에 길이 80㎝, 높이 15㎝ 내외의 장방형 갑석(甲石)을 올려 보호석렬(保護石列)을 마련하였다.
여기에 너비 35㎝, 길이 100∼130㎝의 단면 5각형의 받침석[支柱石] 20여 개가 무덤 둘레를 따라 190∼290㎝ 간격으로 받쳐져 있었다. 또한 봉분 밑 둘레 외곽으로 12개의 구멍이 일정한 간격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깊이 18㎝, 지름 25㎝ 크기의 구멍에는 곱돌[蠟石]로 만든 십이지상(十二支像)을 넣은 것이 확인되었는데, 쥐 · 돼지 · 소 · 닭 4개만 발견되었다. 다른 십이지상은 무덤의 외부 받침석이 마련될 때 파손되어 없어진 것 같다. 이 십이지상은 높이 10㎝ 내외의 작은 것으로 무덤의 바깥쪽을 보게 서있었다.
또한 주변에서 뼈단지[骨壺]가 발견되었다. 뚜껑에는 ‘元和十年(원화십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원화는 중국 당나라 때의 연호로 원화 십년은 815년에 해당된다.
이 능은 70여 개의 받침석이 후대에 와서 보완되었고, 또 주변에서 815년에 만들어진 뼈단지가 발견됨으로써 무덤의 주인공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 능은 815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839년에 죽은 민애왕과는 시기가 맞지 않는다는 견해이다. 이에 따라 이 능을 신라 제40대 애장왕의 능으로 보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