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전덕례(全德禮). 함경남도 함흥 출신. 함흥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나운규(羅雲奎)의 「잘 있거라」의 단역으로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1928년나운규 감독·주연의 영화 「사랑을 찾아서」에 출연하여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 뒤 「옥녀」 등 나운규 작품에 계속 출연하다가 1929년토월회(土月會)에 가입하여 연극배우로 전신하였다. 토월회에서는 박승희(朴勝喜) 작 「아리랑고개」의 주연을 맡아 명성을 떨쳤고, 이 작품에서 상대역을 한 강홍식(姜弘植)과 혼인하였다.
1930년 극단 조선연극사(朝鮮硏劇舍)로 옮겨가서 계속 비극의 여주인공으로 눈부신 활약을 하였다. 1932년부터 1936년 사이에는 토월회 후신인 태양극장(太陽劇場)의 창단단원으로 활약하였다.
1937년 극단 예원좌(藝苑座)의 창립동인, 1941년라미라가극단(羅美羅歌劇團)·백조가극단(白鳥歌劇團) 등에서 활동하였다. 광복 후에는 악극단을 조직하여 전국을 누비기도 하였으나, 주로 영화에 전념하였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옥녀」·「사랑을 찾아서」(1928)·「목포의 눈물」(1958)·「저 언덕을 넘어서」(1960) 등이며, 연극작품은 「아리랑고개」·「눈먼 동생」·「눈물」 등이다. 그녀는 ‘눈물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비극의 여주인공역에 뛰어나 영화·연극계에 비극배우로서 많은 기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