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하음(河陰). 강화 출신.
어릴 때 내시부(內侍府) 소속으로 승진을 거듭하여 동첨내시부사(同僉內侍府事)가 되고, 1447년(세종 29) 동판내시부사(同判內侍府事)를 거쳐 1452년(문종 2) 동지내시부사(同知內侍府事)가 되었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황보인(皇甫仁) · 김종서(金宗瑞) 등 원로대신을 제거한 계유정난 당시에 수양대군을 적극 도운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2등이 되고 강천군(江川君)에 봉하여졌다. 1455년(세조 1) 세조가 즉위하자 좌익공신(佐翼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1458년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에 승진되고, 1466년 하음군(河陰君)으로 개봉(改封)되고, 1468년 품계가 숭록대부에 이르렀다. 환관으로 공신이 되고 품계가 1품에 이른 것은 전균이 처음이다.
죽은 뒤에 봉상시에서 양경(襄敬)이라는 시호를 논의하여 정하였으나, 사헌부의 반대로 내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