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선조 25) 무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까지 왕을 호종(扈從)하였다. 공으로 감찰이 되었으며, 내금위장·별군직(別軍職) 등을 역임하였다.
1603년 함경도북병사 군관으로서 국경을 침범하는 여진족을 격퇴하고 변방을 지키는 데 공을 세웠다. 그 뒤 김해부사를 거쳐 1606년 부령부사에 이어 창성부사를 역임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명나라의 요청으로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이 군사를 이끌고 요동에 출정할 때 김응하(金應河)를 따라 좌위장으로 출전하여 선봉에 나서서 싸우다가 잡혀 항복 권유를 받았으나 끝까지 항거하다가 살해되었다. 1796년(정조 20)에 선천의 의열사(義烈祠)에 추배되었으며, 충신정문(忠臣旌門)이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