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나주 출신. 일제에 의한 국권침탈 이후 국권회복에 뜻을 품고 1917년 김교락(金敎洛)·문재교(文在敎)·김영하(金榮夏)·양재홍(梁在鴻)·고성후(高成厚) 등과 동지적 결합을 이룬 뒤, 나주·함평·화순·순천 등 주로 전라남도지역에서 자산가를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였다.
그 뒤 약 1년 동안 10여 차례에 걸쳐 1,000여 원의 군자금을 수합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1919년 3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