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고종 18)∼1958. 서울 출신. 1902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군악대 대원으로 입대, 지도자이던 독일인 에케르트(Eckert,F.)에게 지도를 받았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군악대가 이왕직양악대(李王職洋樂隊)로 개명되어 1916년 에케르트 생존시까지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플루트를 연주하였으며, 작곡을 배워 관악기와 그 밖에 노래 등을 남겼다. 작품으로는 일반적으로 민요라고 알려진 「태평가」를 비롯하여 동요조의 노래 「내 고향」 등을 작곡하였다. 1945년 광복 이전에는 물론 1960년대까지도 많이 알려진 노래였다.
1916년개성의 송도고등보통학교의 관악지도교사로 1930년까지 재직, 이 학교의 관악대를 수준급으로 올려놓았다. 이 기간에 많은 관악행진곡을 작곡하였으며, 그 중 「추풍(秋風)」·「돌진(突進)」 등은 1945년 이전까지 한국인이 작곡한 유일한 관악곡이었다.
1930년대 후반개성에서 서울로 올라와 JODK관현악단 등에서 연주자로 활동하였으며, 한전·철도국 등의 관악대에서 지도교사로서 활동하였다. 그의 작품은 에케르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서양의 기법은 썼지만, 한국 전통적인 음조를 바탕으로 새로운 의미의 신한국음악의 기반을 이룩하는 데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