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서북면병마사·형부상서 등의 벼슬을 지냈다.
1184년(명종 14) 서북면병마사로 있으면서 백성의 재물을 거두어 내부(內府)에 바쳐 왕의 환심을 샀다.
서북면에서 돌아와 아들 정윤당(鄭允當)을 전조(銓曹: 인사행정부서)에 임명하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정윤당의 나이가 어리고 지식이 없었으므로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郎)에 임명되었다.
1195년 형부상서로 승진하자 참지정사(參知政事) 상장군 문장필(文章弼) 등 여러 장군이 “정세유가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로 있을 때 백성들로부터 명주실과 진귀한 물품 등을 거두어들이면서 공물로 바치는 것이라고 사칭하고 역을 통해 그의 집으로 옮긴 점, 형부상서로 있으면서 문서를 뜯어고치고 법을 마음대로 해석하면서 뇌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의 죄를 다룬 죄” 등을 들어 탄핵하여 섬에 유배되었다.
그 뒤 풀려났다가 1194년 반역을 도모한다는 대정(隊正) 이금대(李金大)의 밀고에 의해서 그 아들 정윤당·정숙첨(鄭叔瞻) 등과 함께 남쪽 변방으로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