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쓰고 있는 정악은 전통음악의 통칭인 아악(雅樂)과 동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세종 때 중국계 아악을 정비한 박연(朴堧)의 문집『난계유고(蘭溪遺藁)』중 「청정묘조정악소(請定廟朝正樂疏)」에서 말한 정악은 전통적인 우리의 음악이 아니고, 중국계 아악을 지칭한 것이다.
그러나 박효관(朴孝寬)의 『가곡원류』발문(跋文)에 “무릇 노래를 읊는 풍도는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소리 또한 바르지 못할지니……그 정음(正音)의 인멸을 개탄하여 마지않는다.”라고 한 정악은 전통가곡을 의미한다.
1909년에 조양구락부(調陽俱樂部)가 발족되고, 1911년에 재정비하여 출발한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를 후원하기 위하여 1911년에 정악유지회(正樂維持會)라는 후원단체가 조직된 바 있는데, 조선정악전습소의 주요 사업은 가곡을 비롯하여 거문고·가얏고·양금·단소·생황(笙簧) 등과 이밖에도 대금·피리·해금과 모든 전통악기를 전수, 보급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
전수과목으로는 가곡 중 남창가곡(男唱歌曲)과 여창가곡(女唱歌曲)·가사(歌詞)·가곡의 반주, 여민락(與民樂)·도들이(尾還入)·영산회상(靈山會相) 등의 곡이 있었다. 즉, 박연이 말한 정악은 중국계 아악이었으나, 『가곡원류』발문의 정음은 전통가곡을 가리킨 것이고, 정악유지회나 조선정악전습소의 그 정악은 민요나 잡가가 아닌 가곡·영산회상·여민락 등 당시 지식층에서 즐기고 배우던 전통음악을 뜻한다.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아악 또는 정악의 개념은 동일한 내용의 음악, 즉 전통적인 향악(鄕樂)을 가리킨다.